로마에 이른 복음 – 장재형(장다윗)목사

  1. 몰타에서의 구원 역사와 바울의 표류

바울과 일행은 사도행전 27장에서부터 극적인 표류와 난파의 과정을 겪는다. 당시 지중해를 건너는 항해 자체가 쉽지 않았으며, 바울을 비롯한 죄수들과 승객들이 탄 배는 크레타 섬 인근에서 거센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 오랫동안 표류하게 된다. 이 광풍 앞에서 모두가 절망하며 음식조차 삼키지 못할 정도로 사기가 저하되었으나, 바울은 하나님께 받은 게시를 통해 “배는 파선되겠지만 너희 가운데 한 사람도 목숨을 잃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을 선포한다. 이 말은 단지 종교적 위로에 그친 것이 아니라, 거친 바다에서 오직 하나님만이 베푸실 수 있는 놀라운 섭리를 보여 준다. 실제로 배가 몰타(멜리데) 섬 인근 해안에서 부서지는 파선을 맞이했지만, 배에 타고 있던 276명 모두가 헤엄쳐 무사히 섬에 도달하게 된다. 이 장면은 사도행전 27장 후반부에서 인간적인 희망이 거의 끊긴 순간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성취되는지를 드러낸다.

장재형(장다윗) 목사는 이 몰타 섬 상륙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세밀한 보호하심을 강조한다. 만약 사람들이 지쳐 희망을 아예 내려놓고 흩어졌다면, 혹은 병약하거나 부상을 입었다면, 결코 전원 무사히 섬에 오를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몰타 섬은 로마에서 약 500km 정도 떨어진 지점으로, 시칠리아 바로 아래 위치한다. 고대부터 몰타는 지중해의 중요한 무역 항로였기에, 배가 거세게 표류하던 중 그 섬에 닿았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님의 시간표 안에 있음을 시사한다. 중세나 근세 시대에도 몰타는 동방 선교나 중동 지역에 진입하는 선교사들이 정박하는 중요한 전략 기지였는데, 이는 사도 바울의 시대부터 이미 그 섬이 어떤 식으로든 복음 전파 과정에 쓰임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몰타 섬에 상륙했을 때 나타난 섬 주민들의 반응 역시 눈길을 끈다. 성경은 이들을 가리켜 ‘토인들’이라고 표현하지만, 이들은 제법 큰 규모인 276명의 낯선 이방인 난파자들을 전혀 적대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도행전 28장 2절에 기록된 것처럼, 그들이 비가 오고 날이 차가운 상황 속에서도 불을 피워 주며 바울과 일행을 극진히 맞아준 사실은 당시 문화적, 종교적 배경으로 보아 매우 이례적이다. 장재형 목사는 여기서 하나님의 세심한 섭리와 더불어, 복음이 전해지는 현장에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사람들의 마음이 열리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함께 설명한다. 아무런 연고도 없고, 자칫 적개심까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몰타 주민들은 이들의 안전을 돕고 후하게 대접했다. 이는 초대교회 시절부터 하나님께서 복음이 필요하거나 하나님의 뜻이 있는 장소에 미리 사람들의 마음을 예비해 두셨음을 시사한다.

특히 바울이 나뭇가지를 모아서 불을 피우다가 독사에 물리는 장면은 이 사건에 신비로움을 더한다. 바울의 손을 무는 독사를 본 섬 주민들은 처음에는 “이 자가 살인자인가 보다, 바다에서는 살아남았지만 결국 신의 심판을 면치 못했다”고 생각한다. 이는 고대 사회에서 매우 흔한 인과응보적 사고방식을 보여 주는데, 바다에서 구출된 사람이 독사에게 물려 죽는다면, 그 사람이 반드시 극악한 죄를 범했을 것이라는 일종의 민속적 믿음이 작동한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물린 자리에서 별다른 고통의 심화나 중독 증세 없이 멀쩡히 살아남았고,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은 그를 향해 “신이라”고까지 말한다. 장재형 목사는 이 부분에서, 하나님의 백성조차 때로는 타인에게 ‘신격화’되거나 과도한 흠숭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바울은 조금도 자신을 높이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능력과 기적으로 이 일이 일어났음을 담담하게 드러냈을 뿐이었다.

이후 바울이 몰타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인 보블리오에게 초청받아 사흘간 머무르는데, 그 아버지가 열병과 이질로 쓰러져 있었다. 고대 지중해 지역에서 이질은 치명적 전염병으로 간주되기도 했으며, 고열이 동반되는 여러 질환은 신속한 치료법이 딱히 없었다. 바울은 이 환자를 찾아가 기도하고 안수함으로 그를 낫게 했다. 이 기적으로 인해 섬 전역에 바울의 존재와 그가 전하는 복음에 대한 호기심이 퍼져 나갔다. 결국 여러 병자들이 바울에게 나와 치유받았고, 그로 인해 몰타 주민들은 바울 일행이 섬을 떠날 때 필요한 쓸 것들을 아낌없이 공급해 주었다. 장재형 목사는 이 장면을 두고, 하나님의 사람이 어느 땅에 들어갈 때 그 땅에 임하는 영적인 복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한다. 바울과 동역자들이 겪었던 일은 단지 불가항력적인 조난이 아니라, 하나님이 의도하신 복음 전파 여정의 한 장면이었다.

몰타 섬에서 3개월 동안 겨울을 보낸 뒤, 바울 일행은 2월 무렵에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다시 로마를 향해 출항한다. 누가는 여기에 배 이름인 ‘디오스구로’까지 적어 두어, 독자들에게 이 모든 기록이 풍문이 아닌 구체적 사실임을 일깨워 준다. 사도행전에는 바울의 항해 경로나 도착 지점들이 상세히 적혀 있어, 이를 통해 1세기 지중해 무역선의 항로, 당시 해상 무역의 흐름을 역사적으로 유추해 볼 수도 있다. 장재형 목사는 성경이 단순한 종교적 도덕 교훈 집이 아니라, 실제 역사적 배경과 지명을 포괄하는 구체적이고도 생생한 증언임을 강조한다. 수라구사, 레기온, 보디올 등을 거쳐 드디어 육로를 통해 로마에 접근한다는 사도행전 28장의 이야기는, 고단한 표류 끝에 “드디어 바울이 로마에 도착한다”는 클라이맥스를 향해 나아가는 전개로 작용한다.

이처럼 몰타에서의 표류와 구원 역사는 하나님의 섬세한 주권과 복음 확장의 흐름을 여실히 보여 준다. 많은 이가 죽을 뻔한 상황에서 모두의 생명을 보존하신 하나님은, 단지 한 공동체를 살려내시는 것으로 멈추지 않고, 그곳을 복음 전파의 새로운 기지로 삼으셨다. 몰타 주민들의 호의와 치유의 기적을 통해, 바울은 도리어 제국의 심장부인 로마로 가는 길목에서 귀한 열매를 거두었고, 결국 로마에서 2년 넘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확보한다. 장재형 목사는 우리가 삶에서 예상치 못한 풍랑을 만났을 때, 그 배후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눈앞에 닥친 고난이 복음의 문을 여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몰타 섬에서의 경험이 없었다면, 바울의 로마 입성도, 그 이후 펼쳐지는 수많은 만남도, 그리고 빌레몬 같은 성경 서신들의 집필도 달라졌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27~28장에 걸친 바울의 표류와 몰타 상륙 사건은 서구 기독교 역사와 전 세계 복음화의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다고 할 만하다.

장재형 목사는 또한 몰타 섬이 훗날 수세기 동안 중요하게 주목받게 되었음을 상기시킨다. 성지 순례나 기독교 역사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바울의 몰타 표류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 1세기 지중해 세계에서 발생한 이 사건은 이후 수많은 신학적·역사적 해석의 시발점이 되었다. 몰타가 한낱 작은 섬처럼 보이나, 오히려 폭풍우에서 표류하던 배를 안전히 인도하는 하나님께서 그 땅을 통해 새로운 복음의 역사를 여셨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는 것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어쩌면 당시 몰타 섬에서 벌어진 모든 일들을 ‘우연’으로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성도들 역시, 세계 어느 구석에서 어떤 시련을 만나든 그 자리에 하나님이 놓으신 목적과 부르심이 숨어 있음을 믿고, 그 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릴 준비를 갖춰야 한다는 메시지를 발견하게 된다.

결국 몰타에서의 구원 역사와 표류 이야기는, 성경 안에서만 국한된 “옛날 얘기”가 아니라, 모든 시대의 성도들이 읽고 적용해야 할 영적 지침서를 제공한다. 하나님의 약속은 결코 헛되지 않으며, 파선처럼 보이는 절망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을 통해 사람들의 생명을 지키시고 복음을 빛나게 하신다. 교회 역사와 선교의 길에서도 이와 같은 패턴이 반복적으로 발견되는데, 장재형 목사는 “그 모든 과정이 단지 기록된 역사로 멈추지 말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직접 경험하는 살아 있는 간증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몰타 섬에서 바울의 표류는 결과적으로 아무도 막지 못하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어떻게 사람들의 삶과 맞닿아 있는지를 놀라운 방식으로 보여 주는 장면이다.

  • 로마에 도착한 바울과 형제들의 사랑

바울은 몰타에서 3개월을 머문 후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수라구사, 레기온, 그리고 보디올을 거쳐 마침내 로마에 가까워지게 된다. 사도행전 28장 15절 이하를 보면, 이 소식을 들은 로마의 형제들이 무려 압비오 저자와 삼관까지 마중을 나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에 삼관이나 압비오 저자라는 지명은 로마 시내에서 50km 이상 떨어진 지역으로, 오늘날로 치면 자동차로 한두 시간이 걸리는 길일 수 있으나, 당시에는 걸어서 이틀 정도를 소비해야 하는 상당히 먼 거리였다. 그런데도 이들은 바울이 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발 벗고 나와 그를 환대했다. 이것은 초대교회 성도들의 뜨거운 사랑과 환대 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다.

장재형 목사는 이러한 환영 장면을 두고, 초대교회가 지녔던 ‘서로 돌봄’의 정신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초대교회는 로마 제국 전역에 퍼져 나갔고, 흩어진 성도들이 종종 이처럼 서로를 맞으러 길을 나서며 함께 기뻐했다. 인간적으로 보면 가택 연금 상태로 송치되어 오는 바울은 큰 힘이 없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바울이 어떤 존재인지, 그의 복음 사역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있었고, 동시에 하나님의 종을 환대하는 것이 곧 주님을 환대하는 일임을 깨닫고 있었다. 이 사랑의 행위는 단순한 예의 이상의 영적 교제로 드러난다.

압비오 저자와 삼관까지 나온 형제들을 보고 바울은 사도행전 28장 15절 후반부에 따르면 “하나님께 사례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었다”고 한다. 멀리서부터 찾아온 그들의 환대와 격려가 바울에게는 큰 힘이 되었음이 분명하다. 바울은 이미 예루살렘에서부터 감금된 신분이었고, 수많은 재판과 고초를 겪은 뒤 이제야 로마에 도착할 수 있었다. 또한 앞서 몰타 섬에서 난파까지 겪었으니,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큰 고단함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바울을 달려가 맞아 주는 형제들의 모습은, 초대교회가 공유하던 형제애와 연대 의식의 결정체다. 이 장면을 통해, 교회 공동체가 서로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담대한 확신을 불어넣을 수 있는지 확연히 드러난다.

장재형 목사는 여기서 초대교회의 환대 정신을 현대 교회에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교회가 건물이나 예식의 틀 안에 갇혀 있다면, 초대교회가 보여 준 “달려 나가 맞이하는 사랑”을 되살리는 일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신약성경 곳곳에서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고 권면하는 메시지를 상기해 보면, 누군가를 적극적으로 영접하고 보살피는 일이야말로 복음 공동체의 핵심 DNA 중 하나임을 알 수 있다. 형제를 정성껏 맞이하고 함께 기뻐하는 모습은 여전히 유효한 복음의 진수를 체현하는 행위다.

바울은 결국 로마에 들어와서 일반 수감자가 아닌, 미결수 신분으로 가택 연금 상태에 처해진다. 로마법에서 황제에게 상소한 이들은 최종 재판 전에 일정 기간을 기다려야 했는데, 이 기간 동안 일정 부분 자유로운 왕래나 외부인 접촉을 허용받을 수도 있었다. 사도행전 28장 16절에서 “바울은 자기를 지키는 한 군사와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는 구절이 이 상황을 잘 보여 준다. 즉 바울은 완전히 절박한 감옥에 갇힌 것이 아니라, 로마 군사가 상주하는 집에서 어느 정도 자유롭게 사람들을 만나 복음을 나눌 수 있었다.

이는 복음을 전하는 데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되었다. 사도행전 28장 마지막 두 절은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아무도 금하는 자가 없었다”는 말로 끝을 맺는다. 누가는 왜 사도행전을 이런 방식으로 마무리했을까. 많은 성경학자는 이것을 “열린 결말”이라고 부른다. 즉 복음이 어떤 억압도 받지 않고 계속 확장된다는 메시지가 언뜻 결론처럼 보이지만, 실은 지금도 그 복음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암시한다. 가택 연금 상태라면 일반적으로 선교 활동에 제약이 있어야 하는데, 역설적으로 바울은 한가운데에서 자유롭게 복음을 전했다. 사람들은 도리어 그를 찾아왔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결코 인간의 어떤 환경적 구속으로도 막히지 않는다는 강력한 진리를 드러낸다.

바울이 로마에서 보낸 2년은 여러 모로 귀중했다. 교회사 연구자들은 이 기간에 바울이 옥중 서신으로 불리는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를 썼다고 본다. 이 편지들은 초대교회 신앙과 복음 이해를 심화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특히 빌레몬서의 경우, 가택 연금 상태의 바울을 찾아온 도망 노예 오네시모를 기꺼이 복음으로 품고, 그 주인 빌레몬에게까지 사랑으로 권면하여 “오네시모를 형제로 대하라”고 말하는 내용이 전개된다. 이는 당시 노예 제도가 지배적이던 사회에 큰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는 급진적 메시지였고, 바울이 처한 위치가 비록 “감금 상태”였어도 복음의 본질적 능력은 전혀 수그러들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장재형 목사는 바울이 로마에 오기까지의 모든 길과 로마에서의 2년 체류 과정이, 결국 복음을 전파하고 성도들을 격려하기 위한 하나님의 방대한 계획이었음을 힘주어 말한다. 사도행전 28장은 그 결정적 결실이라 할 만하며, 바울에게 쏟아진 로마 형제들의 사랑 또한 이 대목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환란과 핍박 속에서도 여전한 성도들의 환영과 격려가, 바울의 담대한 선포를 가능케 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의 섭리 아래서 펼쳐진 것이었다.

이러한 사랑과 환대의 실천은 복음의 핵심 가치를 생생히 드러낸다. 예수께서도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말씀하셨듯, 복음의 실체는 교회 공동체에서 오가는 사랑 가운데 구현된다. 바울은 철저한 감시 하에 있으면서도, 형제들의 따뜻한 손길과 마음으로 인해 다시 힘을 냈고, 그래서 “담대하게”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었다. 장재형 목사는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어려움에 처한 지체를 격려하고 세워 줄 수 있는 성도들의 적극적이고 희생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없다면 교회는 단지 제도화된 기관으로 전락할 위험이 크며, 초대교회가 보여 준 거룩하고 아름다운 공동체성도 상실될 수 있다. 반면 어떤 상황에도 서로를 품고 기꺼이 사랑을 베푸는 교회는 역사의 폭풍 속에서조차 꺾이지 않고 성장해 간다.

결국 로마에 도착한 바울과 그를 맞아 준 형제들의 사랑 이야기는, 몰타 섬에서의 구원 역사와 표류 경험을 거쳐 도달한 결론부이자 또 다른 복음 확장의 출발점이다.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된 복음이 드디어 제국의 심장부인 로마까지 도달했다는 것은, 사도행전이 제시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대위임령이 본격적으로 전 지중해 세계로 뻗어나가는 시금석이 되었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휘된 기적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서로를 돌보는 교회 공동체의 헌신과 사랑이었다고 장재형 목사는 힘주어 이야기한다. 이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도 매우 큰 울림을 준다.

  • 이스라엘의 소망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바울의 변론

사도행전 28장 후반부에서 바울은 로마에 도착한 뒤 가장 먼저 로마에 거주하는 유대 지도자들을 불러 모은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체포된 이후 계속해서 동족인 유대인들로부터 상당한 반대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유대인에 대한 사랑과 연대 의식을 버리지 않았음을 여러 서신에서 드러낸다. 로마서 9장에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노라”고 말할 정도로, 바울은 민족을 향한 애틋함을 간직했다. 이는 바울 자신의 과거 바리새인적 열정에 기반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이스라엘의 소망’을 자신이 발견했기 때문에 더욱 적극적으로 동족에게 전달하려 했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바울은 로마 유대인들에게 자신이 결코 율법과 조상들의 관습을 깨뜨리려는 의도를 가진 적이 없음을 해명한다. 사도행전 28장 20절에서 바울은 “이스라엘의 소망을 인하여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이스라엘의 소망은 구약의 예언자들이 오랜 세월 동안 선포해 온 메시아적 기대, 곧 야훼의 날과 기름부음 받은 자의 도래에 대한 희망이다. 바울은 로마에서마저 이 주제를 꺼내며, 자신이 따르는 예수야말로 바로 그 메시아라는 사실을 열띠게 증거한다.

이스라엘의 소망과 하나님의 나라라는 두 가지 개념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구약의 율법과 예언자들은 메시아가 오셔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이 다스리는 새로운 질서인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실 것이라고 가르친다. 바울은 이스라엘의 소망이 완성되는 방식이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나라라는 점을 늘 역설했다. 그가 사도행전 28장 23절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라고 전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가 구약 성경에서 이미 예언되어 왔고, 그 모든 예언이 이 분 안에서 완성되었다는 설명을 로마 유대인들에게 설득력 있게 펼쳤다는 뜻이다.

장재형 목사는 사도행전이 반복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라는 주제를 병행해 소개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초대교회 복음의 핵심은, 예수께서 단순히 훌륭한 교사나 예언자가 아니라, 죄인을 구원하시며 세상을 새롭게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확신에 있다. 그분이 이 땅에 오심으로써 종말론적 희망이 부분적으로 실현되었고, 이제 점진적으로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어 궁극적으로 완성될 것이라는 기대가 이 복음의 틀을 형성한다. 이는 바울이 유대인들이 대망하던 “이스라엘을 회복하시는 하나님”이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일을 시작하셨다고 역설하는 것과 맥이 통한다.

하지만 28장 24절에서 확인되듯, 같은 메시지를 듣고도 어떤 이들은 믿고, 어떤 이들은 믿지 않는다. 바울의 논증이 아무리 타당해 보여도, 듣는 이들의 마음이 완악해져 있으면 결코 복음을 수용하지 못한다. 바울은 이를 가리켜 이사야 6장 910절의 예언, 즉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한다”는 말씀에 비추어 설명한다. 이는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이스라엘이 일정 기간 메시아를 거부하는 사이에 복음이 이방 세계로 확장되고, 그 뒤에 이스라엘도 거룩한 질투심을 가지게 되어 결국 돌아올 것이라는 로마서 911장의 심오한 역사 해석과 연결된다.

바울은 사도행전 28장 28절에서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을 이방인에게로 보내신 줄 알라. 저희는 또한 들으리라”라며 단호하게 선언한다. 이는 복음이 단순히 유대 민족의 경계를 넘어, 제국 전역, 나아가 온 열방으로 퍼지게 될 것임을 확증하는 말이다. 비록 바울이 당대에 자기 동족들에게서 격렬한 저항을 경험했을지라도, 결국 하나님의 나라는 로마 제국 전역, 그리고 역사 전 시대에 걸쳐 퍼져 나간다. 약 3세기 후, 콘스탄티누스 대제를 통해 기독교가 공인되고 국교화의 길을 걸어가는 과정을 역사적으로 바라보면, 바울의 이 선언이 단순한 욕망이 아니라 실제로 이루어진 예언임을 알 수 있다.

장재형 목사는 이 대목에서 복음을 전하는 자의 자세와 신학적 해석의 중요성을 언급한다. 복음은 본질적으로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유대인의 배타성이나 이방 세계의 무지함을 모두 뛰어넘는다. 바울이 “이스라엘의 소망”을 근거로 삼아 로마 유대인들에게 다가갔음에도, 일부가 받아들이지 않고 일어서는 모습은 신앙의 역설을 잘 보여 준다. 그러나 이 역설이야말로 복음이 더욱 넓게 확산되는 통로가 된다. 유대인이 거부한 공간에서 이방인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이방인 교회의 성장으로 인해 다시 유대인들이 자극을 받아 복음으로 돌아오는 순환 구조가 구약 시대의 예언과도 맞물려 일어난다.

사도행전의 최종 장인 28장이 “이후로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구체적 설명 없이, “바울이 로마에서 자유롭게 복음을 전했다”는 결론으로 끝나는 것도 이 같은 “열린 결말”의 상징성이 짙다. 누가는 바울이 황제 앞에서 어떤 판결을 받았고,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를 직접적으로 서술하지 않는다. 여러 교회 전승에 따르면, 바울은 이때 잠시 석방되어 서바나(스페인) 선교를 진행하려 했다는 이야기부터, 2년 후에 다시 잡혀 순교했다는 전승 등이 공존한다. 하지만 누가는 이러한 후일담을 쓰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바울”의 현재진행형 메시지만 남긴다. 이는 역사의 주역이신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끝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이어져 나간다는 상징적인 표현이 된다.

장재형 목사는 이러한 열린 결말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거듭 강조한다. 바울의 시대에 로마가 복음의 새로운 중심지로 떠올랐다면, 지금 이 시대에 복음은 지구촌 곳곳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변치 않는 사실은, 하나님의 나라는 결코 멈추지 않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어떤 장벽도 돌파한다는 점이다. 몰타 섬에서의 표류가 로마 도착의 디딤돌이 되었듯, 오늘날에도 어둡고 위험해 보이는 여건이 오히려 복음 확장의 발판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바울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동족과 이방인 모두에게 복음을 전한 열정은, 교회가 분열과 갈등 속에서 흔들릴 때마다 다시금 회복해야 할 모범으로 손꼽힌다.

이스라엘의 소망과 하나님의 나라라는 주제는, 교회가 구약에서 신약에 이르기까지 계시된 하나님의 전체 플랜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왕”이자 동시에 “온 세상의 구주”가 되신다. 유대인들이 이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그 거부로 인해 도리어 이방 세계가 복음에 눈뜬다는 역동적 서사가 사도행전 전체를 휘감는다. 장재형 목사는 이러한 서사를 공부하는 것이 21세기 교회에도 여전히 시급하다고 진단한다. 복음이 여러 갈등을 뚫고 여기까지 전승되어 왔듯이, 오늘날에도 복음을 전하다 보면 거절을 당하거나 오해를 받는 일이 많다. 그럼에도 복음의 본질을 지키며 담대히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한 영혼 한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확장해 나가는 길임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사도행전 28장, 그리고 그 마지막 절들은 모든 내용을 집약하여 세 가지 사실을 말해 준다. 첫째, 복음은 어떠한 환경도 돌파한다. 둘째,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메시지다. 셋째, 그것이 유대인과 이방인을 아우르며, 또 동서고금을 이어서 한 데로 묶는 강력한 진리라는 점이다. 장재형 목사는 이 결론에서, 교회가 그 본령을 잊지 말고, 끊임없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호소한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곧 이스라엘의 소망과 전 세계 모든 민족의 소망을 전할 사명을 가진 공동체다. 바울이 감금당한 상태에서도 쉼 없이 그 소망을 선포했던 것처럼, 오늘날 교회 역시 다양한 제약과 난관 앞에서 자주 좌절하지만, 오히려 그 상황이 복음을 더욱 힘 있게, 또 창의적인 방식으로 확장시키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사도행전 28장은 단지 “바울의 로마 도착기”가 아니라, 구원 역사 전개에서 결정적인 분기점이며, 하나님의 약속이 오랜 세월 동안 어떻게 인류 역사 한가운데에서 성취되고 확장되는지를 드라마틱하게 요약해 주는 장이다. 로마에 이른 이스라엘의 소망, 이방인에게로 뻗어 가는 복음의 흐름, 그리고 서로 사랑으로 연결된 초대교회의 공동체성은 교회가 본받아야 할 영적 유산이다. 장재형 목사는 이 장에서 마침표 대신 ‘계속되는 복음의 기록’을 보라고 촉구한다. 사도행전 29장은 존재하지 않지만, 교회사를 통해 실제로 쓰이고 있다는 유명한 말처럼, 바울의 로마 입성 후 이야기는 모든 세대의 성도들에 의해 계속 이어져 온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오늘도 우리가 목도하는 하나님의 나라의 현재진행형 역사다.

장재형 목사는 이러한 사도행전 28장의 메시지를 깊이 묵상한 뒤, 우리가 머무는 곳마다 복음이 전해지고, 소외된 이들이 환대받으며,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하나님께 돌아와 소망을 발견할 수 있도록 헌신하자고 당부한다. 파선 위기나 가택 연금 같은 절망적 상황마저도 하나님은 복음의 통로로 바꾸신다. 초대교회는 그 증거였다. 이 기록된 말씀과 역사가 오랜 세월을 거쳐도 빛바래지 않고, 끊임없이 성도들의 가슴을 두드리는 이유는, 하나님의 나라는 결코 중단되지 않고 세계와 역사를 관통하며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는 그 거룩한 연속성 안에서, 때로는 몰타 섬의 주민 같은 이방인을 맞이하고, 때로는 로마 형제들처럼 다른 이를 먼저 마중 나가며, 또 때로는 바울처럼 어느 자리에서든 하나님 나라를 담대히 선포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불꽃 같은 사명을 이어 간다.

결국 사도행전은 28장에서 공식적인 기록을 마무리하지만, 그 속에 담긴 영적 원리와 대사명은 멈추지 않고 지금의 교회가 그 서사를 계속 써내려가도록 요청하고 있다. 우리는 몰타 섬 같은 의외의 장소에서도 구원의 역사를 펼치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하며, 로마에 모여 있는 형제들을 통해 사랑과 환대를 배우고, 이스라엘의 소망이자 이방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민족에게 증가시키는 것을 사명으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그 선교적 행보 속에서, 바울이 경험한 표류와 체포, 그리고 수많은 시련보다 훨씬 더 크신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시대에도 강력히 임할 것을 확신해야 한다. 이것이 장재형 목사가 사도행전 28장의 주해와 설교를 통해 성도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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