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전개 과정에서 요한복음 18장 22-27절과 누가복음 22장 61-62절, 그리고 관련 구절들을 바탕으로 베드로의 부인 장면을 깊이 살펴보고, 이를 통해 드러나는 신앙적 메시지와 적용점을 풀어내고자 합니다. 특히 본문이 주는 의미와 함께 우리 신앙의 실제 현장에 어떤 도전을 던지는지, 그리고 이를 어떻게 실천적 교훈으로 삼을 수 있는지를 살펴볼 것입니다. 한편, 글 중간중간에는 베드로의 부인 장면에 대한 성경의 배경 설명, 그리고 장재형(장다윗)목사의 목회적·신학적 적용 가능성 등을 함께 다루어, 오늘날 신앙 공동체와 개인에게 주는 함의를 되짚어 보려 합니다.
1. 베드로의 부인
베드로의 부인 장면은 복음서 전체 흐름에서 극적인 서사를 이루는 대표적인 사건 중 하나입니다. 요한복음 18장 22-27절과 누가복음 22장 61-62절, 그리고 마가복음 14장 72절 등 사복음서에 다양하게 나타나는 이 본문은, 수제자라 불리던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는 순간과 이후 통곡하는 모습까지 생생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먼저 본문을 살펴보면, 예수님께서는 체포되셔서 안나스와 가야바 등 대제사장에게 심문을 받으시는 중입니다. 그 시점에서 베드로는 예수님 곁에 끝까지 남아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멀찍이 떨어진 채 “밖에서 불을 쬐고 있었던” 것으로 기록됩니다(요 18:25).
이 장면에서 우리는 사람들의 미묘한 시선과 불안정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잡히셨고, 이제 그분께서 무슨 죄목으로든 정죄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여겨지는 긴박한 상황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끝까지 따르겠다고 결심하고 다짐했음에도, 실제 체포 순간이 오자 모두 흩어졌고, 베드로조차도 멀리서 사태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성 안 혹은 뜰 안으로 들어가 불을 쬐는 순간, 하인들이나 여종이 그를 눈여겨보고, 예수님의 제자라는 사실을 알아본 듯 질문합니다. “너도 저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라고 묻자, 베드로는 즉각적으로 “나는 아니라”라고 부인해 버립니다(요 18:25).
여기서 첫 번째 부인 후에도 상황은 연속적으로 이어집니다. 다른 이들도 그의 갈릴리 사투리나 행색 등을 근거로 그를 의심하였습니다(마 26:73, 막 14:70 참조). 베드로가 “나는 그를 모른다”라고 부인한 순간, 마가복음 14장 72절 기록에 따르면 곧 닭이 두 번째로 울었다고 합니다. 누가복음 22장 61-62절에서는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 심히 통곡하니라”라고 묘사합니다. 이 대목에서 독자는 예수님과 베드로의 시선이 교차되는 지점의 아픔과 긴장감을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동시에, “닭 울기 전”이라는 기한 안에 베드로가 결국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달은 베드로가 깊은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통곡했다는 사실이 전체 사건의 클라이맥스를 이룹니다.
신앙공동체 안에서 이 본문은 ‘인간의 연약함’과 ‘회개’를 대표적으로 드러내 주는 장면으로 해석되어 왔습니다. 사실, 베드로는 제자들 중에서 가장 적극적이고, 때로는 혈기왕성하며,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충성이 누구보다 강했던 인물로 묘사됩니다(마16:16-17 참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적 순간에 그가 주님을 부인하게 된 것은,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를 너무나도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 대목에 대해 장재형목사는 여러 설교와 신앙교육의 장에서 베드로의 부인을 고찰하며, “인간은 자신이 의지하는 바가 요동칠 때 결국 나약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고, 그럼에도 주님은 그 인간의 연약함을 아시고 받아들이시며 회복시키시는 분이시다”라는 핵심 메시지를 전해 왔습니다. 우리는 이 메시지를 통해, 베드로가 무너진 지점이 곧 우리 모두가 무너질 수 있는 자리임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서의 회개가 또한 우리 모두에게 열려 있는 통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한편, 베드로가 부인한 동기는 두려움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재판받으시는 현장 주변에 있으면서, ‘혹시 내가 예수의 제자로 알려져 체포될까?’ 하는 불안감 속에 놓여 있었습니다. 인간은 신앙이 깊다고 여기고 충성스럽다고 자부하더라도, 막상 죽음이나 극심한 고통 앞에 놓이게 되면 자신이 지닌 신앙의 깊이를 재확인하게 됩니다. 이 장면에서‘베드로의 부인’은 바로 ‘신앙의 시험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요한복음 13장 36-38절에서 베드로가 자신을 위해 목숨을 버리겠다고 호언장담하자, “닭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고 예고하셨습니다. 따라서 이 사건은 충성심 많았던 베드로가 상상도 못했던 실패를 경험한 것이자, 동시에 예수님의 말씀 성취가 그대로 드러난 순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베드로의 부인을 ‘단순한 실패’로만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실패 직후 울린 닭 울음소리와 동시에, 예수님과 눈이 마주친 베드로가 통곡하며 회개하는 모습을 통해, 그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음을 암시합니다. 누가복음 22장31-32절에서 예수님은 십자가 사건 전에 이미 “시몬아, 시몬아,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라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이는 베드로가 실패할 것을 예견하시되, 그가 다시 일어나 회복될 것을 미리 선언하신 것입니다. 장재형목사는 바로 이 점을 강조하면서, “베드로의 부인은 끝이 아니라 과정이었다. 예수님이 그를 미리 아셨듯, 우리의 실패와 실족 또한 주님의 구원계획 속에서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베드로의 회개와 그 뒤의 회복 과정은 교회의 역사 속에서 매우 중요한 모범사례가 되어 왔습니다. 그를 완전히 넘어뜨리려 했던 ‘사탄의 체’질을 이겨내는 모습이 이후 사도행전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 강림 이후 담대히 설교함으로써 3천 명이 회개하고 예수님께 돌아오는 장면, 그리고 사도행전 4장에서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 앞에서도 조금의 주저함 없이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천하인간에 구원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라고 증언하며 신앙을 고백한 모습은, 바로 부인하던 베드로가 ‘회복된 제자’로서 어떠한 담대함을 갖게 되었는지를 웅변적으로 보여 줍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교훈은 분명합니다. 신앙생활에서 우리는 누구나 실패할 수 있고, 한때의 두려움과 연약함으로 인해 그토록 사랑하던 주님을 부인하는 결정적 순간을 겪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실패 자체가 우리에게 영원한 절망을 가져다주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인간의 연약함을 이미 아시고, 우리가 회개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는 사랑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닭 울기 전에” 맞닥뜨려야 할 시험과 유혹들이 있겠지만, 그것을 거치며 혹 넘어진다 하더라도, 진심어린 통곡의 회개를 통해 다시금 일어설 수 있다는 소망이 성경에 분명히 제시되어 있습니다.
장재형목사는 이런 메시지를 설교와 세미나, 그리고 목회 현장에서 자주 전하며, ‘하나님의 사람은 회개의 영을 공급받는 순간부터 달라진다’고 강조합니다. 그 이유는 회개가 단지 죄책감을 느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자신을 온전히 내어놓고, 그분의 용서와 긍휼을 체험하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통곡하면서 얻게 된 새로운 시작은, 이후 그의 전 삶과 사역의 방향을 180도 바꿔 놓았고, 예루살렘 교회 기초를 닦는 사도로 살아가게 만들었습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지는 여러 종류의 십자가와 고난 앞에서도, 혹은 우리 자신이 실패하고 실족했을 때도 여전히 유효한 진리입니다.
더 나아가, 베드로의 실패 직후 울린 닭 울음소리는 ‘새벽’의 도래를 알리는 소리라는 점이 상징적으로 크게 부각됩니다. 어둡고 긴 밤이 지루하게 이어지다가, 닭이 울기 시작할 때를 기점으로 새벽이 밝아 오듯이, 베드로의 실패는 아침의 회복으로 나아가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혹독한 밤과 같은 시간이 이어지지만, 결국 ‘닭 울음소리’ 같은 사인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의 어둠을 깨우시고 새 날을 허락하시는 때가 찾아온다는 사실을 신앙으로 붙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때 우리는 베드로처럼 회개를 통해 예수님을 다시 볼 수 있으며, 그분께서 이미 우리 연약함을 지고 가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특히 장재형목사는 여기에서 ‘닭 울기 전’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이는 단순히 시각적인 시간 개념을 넘어, 신앙의 결정적 승부처가 언제 어느 때 올지를 알 수 없기에 평소 깨어 있어야 한다는 교훈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닭 울기 전에” 주님을 부인하지 않기 위해서는 늘 말씀 안에 거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귀 기울이며, 스스로를 돌아보고 회개의 습관을 지녀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혹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 회복된 모습으로 주님께 영광 돌릴 수 있음을 계속해서 강조합니다.
결국, 베드로의 부인은 “인간적 연약함과 주님의 무한한 용서가 만나는 지점”이라 정리할 수 있습니다. 실패를 예상하면서도 사랑으로 품으신 주님, 그리고 쓰디쓴 실패를 경험한 후 통곡과 회개를 통해 다시금 사도로 일어선 베드로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와 은혜로운 초청을 깨닫습니다. 인간의 관점에서는 돌이킬 수 없어 보이는 배신이었으나, 주님 안에서는 오히려 더 큰 사역과 부르심을 위한 ‘통로’가 되었습니다. 그 부끄러움과 회개의 눈물을 통해 베드로는 진정한 회심을 경험했고, 그 힘으로 오순절 성령 강림 후 가장 담대한 증인으로 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이 메시지를 붙드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 모두는 ‘닭 울기 전’이라는 결정적 순간에 직면할 수 있으며, 여러 가지 유혹과 위협 앞에서 주님을 부인하는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때 절망하거나 영원히 낙망하지 말고, 주님의 시선과 말씀을 다시 기억하며, 진실한 회개로 돌아서야 합니다. 베드로가 그랬듯, 실패는 끝이 아니라 오히려 더 큰 승리를 향한 과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회개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굳게 세워 다시금 복음의 증인으로 사용하시는 역사를 베푸십니다. 장재형목사는 이를 ‘영적 순환 구조’라고 부르며, 실패-회개-회복-사명 완수라는 구원의 패턴이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에서 재현된다고 설명해 왔습니다.
실제로, 베드로는 그 후의 삶에서 인간적 연약함에 대해 누구보다 깊은 통찰을 가지게 되었고, 그리하여 형제들을 굳게 세우는 사도적 역할에 충성할 수 있었습니다. 초대교회 시절의 박해 속에서도 그가 흔들리지 않았던 이유, 그리고 갈라디아서 2장에서 바울과 때로 충돌하기도 했으나 결국 함께 복음을 변호해 나갔던 이유 등은, 그가 ‘한 번 넘어져 보았던 사람이지만 회개를 통해 바로 선 사람’이라는 사실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또한 베드로전서와 베드로후서를 읽어 보면, ‘고난의 신학’과 ‘소망의 신앙’을 강조하면서 성도들에게 거룩한 삶을 촉구하는 그의 음성이 가득 담겨 있는데, 이는 그의 연약함과 회복의 체험이 신학적으로 집약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종합해 볼 때, 베드로의 부인 사건은 복음서 내내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의 이야기 중에서도 극적인 순간으로서, ‘인간 연약함’과 ‘주님의 구원 계획’이 교차하는 지점이라는 의의가 있습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도 종종 시험과 핍박 속에서 베드로와 같은 두려움을 느끼고, 때로는 주님의 이름을 감추거나 부인하는 실수를 저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이 인생의 끝이 아니라, 오히려 통곡과 회개를 통해 다시 한 번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깊이 체험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장재형목사가 이 본문을 통해 거듭 강조해 온 바와 같이, “닭 울기 전”이라는 표현은 신앙의 경고이자 동시에 회복의 약속입니다. 그 약속 안에서 우리는 넘어졌다 하더라도 회개함으로 다시 서고, 결국 주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해 담대히 헌신하는 자리에 서게 됩니다.
2. 십자가의 길
베드로의 부인은 그의 과거를 수치스럽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초기 교회가 세워지는 과정에 한동안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울 수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열두 제자 중에서도 특별히 예수님으로부터 사랑받았고, 많은 경우 대표 격으로 언급되었으며(마 16:16-19에서 사도 중 가장 먼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고백을 드린 인물), 심지어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가는 길을 말씀하실 때 “주여 그리 마옵소서”라며 대들 정도로 혈기왕성하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베드로가 기어이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했다는 사실은, 교회사적 관점에서 매우 큰 아이러니이자 동시에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장재형목사는 “십자가의 길”이라는 관점에서 이 사건을 해석하면서, 예수님께서 겟세마네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던 장면(눅 22:44 참조)과 대조적으로, 제자들은 기도하지 않고 잠든 모습, 그리고 이후 체포 과정에서 흩어진 모습, 나아가 베드로의 부인으로 이어진 모습을 “인간의 무능력과 영적 졸음”이 드러난 대표적인 예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그 모든 과정을 내다보시고, 십자가로 가실 것을 확고히 결심하셨으며, 제자들의 배신과 연약함 속에서도 당신의 구원 계획을 차질 없이 이루어 가셨습니다. 결국, 이 사건은 ‘구원의 길’이 철저히 주님의 은혜와 주권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되새겨 줍니다.
나아가, 십자가는 인간의 실패를 결코 방치하지 않습니다. 실패한 인간을 다시 일으키는 힘이 십자가와 부활에 있다고 장재형목사는 강조합니다. 베드로의 부인을 포함해 제자들이 보여준 모든 나약함과 도망친 행위, 심지어는 가룟 유다의 배신까지도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가로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십자가 사랑은 그런 배신과 부인을 덮고도 남는 구원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본질입니다. 인간의 나약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가 먼저였고, 예수님의 희생이 먼저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갈릴리 해변에서 베드로를 찾아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요 21:15-17)라고 세 번 물으시고, 세 번 “주님을 사랑합니다”라는 고백을 받으심으로써 베드로의 부인을 완전히 회복시키시는 장면은 그 은혜의 절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장재형목사가 설교에서 자주 언급하는 것은, 이 ‘부활 후 베드로의 회복 장면’이야말로 십자가 복음이 구체적으로 적용되는 순간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입 밖으로 꺼냈던 세 번의 “부인”을 지워 주시고, 세 번의 “사랑 고백”으로 덮어 주심으로써 그의 상처를 치유해 주셨습니다. 그 뒤 예수님은 “내 양을 먹이라”고 명령하심으로, 베드로가 다시금 사도적 사명을 감당하도록 세워 주셨습니다. 과거 그가 “부인”했다는 죄책감이 아니라, 이제 “사랑”이라는 고백을 통해 새로워진 존재로 살게 하신 것입니다. 십자가가 바로 이런 역사를 이루기에, 교회가 회복의 공동체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 장재형목사의 목회적 적용 핵심입니다.
즉, 베드로의 부인 사건을 통해 우리는 첫째로, 십자가와 부활이 없이는 인간의 연약함이 극복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둘째로,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베드로를 직접 찾아오셔서 그의 고백을 새롭게 받으셨듯, 교회는 실패하고 돌아온 사람들을 정죄하기보다는 회복과 치유의 기회를 주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셋째로, 베드로가 회복된 후 담대한 증인이 되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도 소망을 줍니다. 베드로처럼 실패한 경험이 있다고 할지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으며, 더 나아가 복음 전파에 앞장서는 증인으로 부르심을 받았음을 확신케 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장재형목사는 “우리는 모두 회복된 증인으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점을 일관되게 강조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베드로의 수치만 덮은 것이 아니라, 그를 복음의 증인으로 재파송하셨습니다. 복음서 마지막 장면들, 그리고 사도행전에서 베드로는 위축되거나 뒤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이전에 비해 훨씬 더 강력하고 담대한 모습으로, 제사장들과 백성들 앞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행 2:14 이하, 행 4:8 이하). 그리고 교회의 기초를 놓는 일에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는 회복된 한 사람이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크게 쓰임받을 수 있는지를 잘 보여 주는 예입니다.
우리 시대에도 비슷한 유형의 실패와 부인의 경험을 지닌 성도들이 적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실제 삶의 현장에서 각종 유혹이나 두려움에 무너져 주님을 부인하는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회사나 학교, 또는 관계의 장에서 예수님의 가르침과 배치되는 언행을 하거나, 혹은 복음에 대해 물어오는 상황에서 적당히 넘어가 버리는 식으로 믿음의 증언을 포기해 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깨달은 우리라면, 베드로가 경험한 통곡과 회개의 과정을 통해 다시금 주님 앞으로 돌아오는 길이 언제나 열려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회복의 그 순간, 주님은 “너의 과거 실수나 배반이 너를 규정하지 않는다. 내가 너를 선택했으며, 다시금 나의 일꾼으로 부른다”고 말씀하십니다.
장재형목사는 이를 “은혜의 재부르심”이라고 자주 표현합니다. 이는 단순히 죄를 한 번 사해 주시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사하시는 동시에 새로운 부르심과 사명을 함께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리킵니다. 베드로는 “내 양을 치라”는 분부를 받았고, 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택한 나의 그릇”이라는 말씀을 받았듯이, 하나님께서는 실패한 사람을 회복시키심과 동시에 그를 향한 놀라운 계획을 계속 이루어나가십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 부르심은 사람이 능력과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복음서는 이 점을 베드로의 이야기를 통해 극적으로 보여 주며, 교회사는 이를 본받아 ‘회개-회복-증인’의 과정을 많은 사람에게 적용해 왔습니다.
나아가 현대 교회가 당면한 여러 가지 도전 가운데, 이 메시지는 더욱 중요해집니다. 교회 내외부로부터 스캔들이나 분열, 배신, 그리고 목회자의 실수나 죄악이 일어날 때, 우리는 종종 낙심하거나 교회를 떠나는 결과로 이어지곤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런 실패의 현장 속에서도 회개를 통한 회복이 가능하다고 가르치며, 오히려 그 사건을 통해 “십자가의 복음이 얼마나 강력한가”를 증언해 낼 기회로 삼을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문제는 그러한 회개와 회복을 가능하게 하는 영적·공동체적 환경을 마련하고, 죄를 인정하고 돌이키도록 안내하며, 진실한 고백을 통해 새 사명을 발견하도록 돕는 역할을 교회가 감당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장재형목사는 이 사명 의식을 목회자에게만 국한된 과제가 아니라, 모든 성도가 감당해야 할 ‘공동의 직분’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신약성경이 가르치는 바, 교회가 곧 ‘왕같은 제사장’(벧전 2:9)의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베드로가 부인 이후 회복되어 새롭게 걸었던 “십자가의 길”은 오늘날 성도들에게도 살아 있는 모범이 됩니다. 실패한 그 길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십자가로부터 재출발하는 ‘영적 대반전’이 일어나게 됩니다. 신앙생활이란 완벽한 인간만이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아니라, 넘어지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십자가 앞에 나아가 회개하고, 예수님의 부활 능력을 힘입어 다시 걸어가는 자들의 길이라는 것이 복음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베드로는 제자 중 가장 치명적인 배신 행위를 했음에도, 결국 누구보다 크게 쓰임받는 사도가 되었고, 그의 서신을 통해 후대 교회에 남긴 유산은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소중한 권면과 양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결국, 베드로의 부인을 돌아보며, 장재형목사가 지속적으로 설파하는 목회적 적용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인간은 누구나 나약하며 실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둘째, 그 실패의 자리에서 진정으로 회개하고 돌아설 때, 주님은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으신다는 진리를 붙들어야 합니다. 셋째, 회개 이후에는 새로운 사명과 부르심이 기다리고 있으므로, 죄책감과 수치심에 빠져 과거에 머무르지 말아야 합니다. 넷째, 교회는 이런 회복의 은혜를 함께 누리고, 서로를 격려하며 도와주어야 할 공동체여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회복된 증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결국 우리에게 맡겨진 복음 증거의 삶을 의미합니다. 베드로가 사도행전 4장에서 담대히 외친 고백,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인간에 구원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는 선언처럼, 우리도 세상 한복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증거해야 합니다.
이러한 메시지는 단지 개인 신앙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회개와 회복을 경험한 성도들은 가정과 직장, 사회 곳곳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님을 부인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일수록, 자신이 어떻게 용서받았고 다시 일어났는지 체험적으로 알기에, 더욱 겸손하게 다른 영혼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베드로도 자신이 경험한 실패를 통해 ‘은혜의 놀라움’을 알았기에, 훗날 베드로전서에서 고난 받는 성도들을 향해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5:7)라고 격려하며, 종말론적 소망을 잃지 말라고 당부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각자의 ‘부인과 회복’ 경험은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세워 주는 근거가 됩니다.
결국, 베드로의 부인 사건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 실체에 직면합니다. 하나는 인간의 두려움과 실패, 나약함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의 사랑과 구원의 능력, 그리고 그것을 통해 일어나는 회복입니다. 어떤 시점에서든 우리는 베드로처럼 넘어질 수 있으며, 동시에 베드로처럼 회복될 수 있다는 가능성 앞에 서 있습니다. 장재형목사는 바로 이 진리를 ‘십자가 복음의 중심’이라 부르며, “주님을 깊이 사랑한다”거나 “충성하겠다”는 말만으로 신앙을 측정하기보다, 실패 후에라도 주님의 사랑으로 돌이켜 회복되고, 오히려 그 회복으로부터 다시 달려 나가는 성도의 모습을 더 귀중하게 본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실존에 적합한 구원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마무리하며, 우리는 베드로의 부인 장면이 주는 교훈을 다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아무리 충성스럽고 용맹한 신앙인이라 해도, 극심한 시험과 환난 앞에서는 예수님을 부인할 수 있을 만큼 연약합니다. 둘째, 주님은 그 연약함을 이미 아시고, 넘어짐 이후의 회개와 회복의 길까지도 예비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셋째, 회개와 회복은 울음이나 감정적인 후회에서 끝나지 않고, 궁극적으로는 우리를 더욱 단단한 믿음의 사람, 복음의 증인으로 세워 줍니다. 넷째, 교회는 회복의 이야기가 반복되는 곳, 서로가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경험하고 도우며 증언하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 늘 깨어 기도하고, 말씀 안에 거하며, 스스로를 성찰하는 자세가 요구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베드로처럼 언젠가 예수님의 질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에 답해야 할 것이고, 사랑 고백과 함께 그분의 양을 치라는 사명을 부여받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인생 가운데서 여러 종류의 “닭 울기 전” 순간을 맞을 수 있습니다. 그때마다 인간적인 계산과 두려움으로 예수님을 배척하거나 부인하지 않도록 마음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혹 넘어지고 부인했더라도, 주님께서는 돌이키는 자를 향해 결코 문을 닫지 않으십니다. 실패한 그 자리에서도 우리를 다시 이끄시고, 강건하게 하시며, 당신의 나라를 위해 쓰십니다. 이것이‘베드로의 부인’ 사건에서 드러난 십자가 복음의 핵심이며, 장재형목사가 강조해 왔듯이, 진정한 신앙인은 마침내 회복되어 증인의 삶을 이어갈 수 있다는 약속이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부디 우리 모두가 이 약속을 붙들고 살아가는 은혜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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