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형 목사, 새 사람


장재형(장다윗)목사가 전개하는 에베소서 4장에 대한 강해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난 신자의 삶이 어떠한 실존적 귀결로 이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심도 깊은 신학적 담론을 제시한다. 그의 설교는 단순한 윤리 강령의 나열을 넘어, 중생이라는 존재론적 변혁이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삶의 패러다임 전환을 역설한다. 장 목사는 요한복음 16장에서 예수가 죄의 본질을 ‘나를 믿지 아니함’으로 규정한 것을 서두에 인용하며, 모든 죄악의 근원이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에 있음을 환기시킨다. 이러한 분리된 상태에서 파생되는 인간의 타락한 본성, 즉 바울이 여러 서신에서 열거한 ‘옛 사람’의 모습은 우리가 단호히 벗어버려야 할 과거의 유산이다. 장재형 목사는 바로 이 지점에서 에베소서 4장 22-24절의 명령, 즉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는 말씀이 갖는 혁명적 무게를 강조한다. ‘새 사람을 입는다’는 것은 단순한 행동 교정이나 외적인 경건의 모방이 아니라, 심령의 근본적인 새로움을 통해 전인격적으로 재창조되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신자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구체적인 양태로 증명되어야 할 당위성을 지닌다.

장재형 목사의 해석에 따르면, 새 사람의 정체성이 가장 먼저 발현되는 영역은 바로 언어생활이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는 첫 번째 권면은, 진리의 본체이신 하나님과 관계를 맺은 자의 가장 근본적인 표지가 진실성에 있음을 시사한다. 허위와 기만이 정교한 생존 전략으로 통용되는 현대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존재와 언어가 일치하는 삶을 통해 세상의 신뢰를 구축해야 할 사명이 있다. 장 목사는 ‘버리라’는 단호한 동사가 우리의 본성에 거짓의 경향성이 얼마나 깊이 각인되어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고 분석한다. 이는 단순한 습관의 교정을 넘어, 옛 자아의 핵심적 작동 방식을 의지적으로 파괴하고 진리이신 그리스도의 성품을 체화하려는 치열한 영적 투쟁을 요구한다. 세상이 그리스도인을 향해 “저 사람은 믿을 수 있다”고 고백하게 만드는 정직함이야말로, 새 사람의 삶을 입증하는 첫 번째 관문인 것이다.

언어의 영역을 넘어, 장재형 목사는 새 사람의 내면적 감정의 지형, 특히 분노의 문제를 정교하게 파고든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는 구절은 인간 감정의 복잡성을 인정하는 동시에, 그 감정의 발현에 대한 영적 책임을 엄중히 묻는 말씀이다. 그는 모든 분노를 죄악시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경계하며, 불의에 대한 ‘의분(義憤)’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성전을 정화하신 예수의 모습에서 발견되는 이 거룩한 분노는, 죄악에 대한 무감각과 불의한 현실에 대한 안일함을 거부하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심령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더 나아가 장 목사는 로마서의 신학적 구조를 빌려, 하나님의 진노를 이해하는 것이 그의 사랑의 깊이를 깨닫는 전제조건임을 설명한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진노 아래 소멸되어야 할 죄인을 향한 그의 무한한 인내와 구원의 사랑, 이 변증법적 긴장을 이해할 때 비로소 우리는 복음의 광대함에 압도될 수 있다. 따라서 신자의 과제는 분노라는 감정 자체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에너지가 파괴적인 죄로 비화되지 않도록 다스리는 영적 성숙에 있다.

이러한 분노 조절의 실패가 초래하는 비극적 서사는 성경 곳곳에서 발견된다. 장재형 목사는 가인의 이야기를 통해, 정당성 없는 분노가 어떻게 인간 영혼을 잠식하고 최초의 살인이라는 파국으로 이끄는지를 생생하게 예증한다. 동생의 제사만 열납된 현실 앞에서 성찰과 배움 대신 시기와 분노를 선택한 가인에게, 하나님은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고 경고하셨다. 이 경고는 분노의 감정 자체와 그 감정에 자신을 내어주는 죄의 행위 사이에 선택의 공간이 있음을 보여준다. 장 목사는 이어서 모세의 삶을 통해 분노의 연단과 성숙의 과정을 극적으로 조명한다. 애굽 왕궁의 힘의 논리에 익숙했던 청년 모세는 혈기를 이기지 못해 살인을 저질렀으나, 40년간의 미디안 광야 생활을 통해 그의 거친 심성은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한’ 온유함으로 다듬어졌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구원의 위대한 사명을 맡기신 것은, 바로 이 연단된 온유함을 소유한 모세였다. 이는 힘이 아닌 온유함이 땅을 기업으로 얻는다는 하나님 나라의 역설적 원리를 명백히 보여주는 사례다. 결국 분노를 다스리는 힘은 십자가의 고난을 묵묵히 참아내신 예수를 바라보는 믿음에서 비롯되며, 이는 새 사람을 입은 자가 평생에 걸쳐 훈련해야 할 핵심적인 영적 과제라고 장재형 목사는 역설한다.

바울은 분노를 다루는 구체적 지침으로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명하며, 그 이유를 “마귀에게 틈을 타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밝힌다. 장재형 목사는 이 구절을 통해 해결되지 않은 분노가 단순한 심리적 불편함을 넘어, 사탄의 영향력이 침투할 수 있는 영적 균열을 만들어냄을 경고한다. 분노는 우리의 이성과 영적 분별력을 마비시켜, 우리를 파괴적인 충동과 관계의 파탄으로 이끄는 통로가 된다. 이 영적 위기를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더 크고 놀라운 사랑과 용서를 묵상하는 것이다. 자신의 기대와 달리 니느웨가 구원받자 불같이 화를 냈던 요나의 유치한 분노는, 한낱 박 넝쿨조차 아끼는 그의 마음과 수많은 영혼을 귀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극명하게 대조되면서 그 부당함이 드러난다. 장 목사는 우리의 분노 역시 이처럼 자기중심적인 관점에 매몰되어 있을 때가 많음을 지적하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거대한 용서의 관점에서 우리의 상처와 분노를 재해석할 때 비로소 치유와 해방이 일어난다고 가르친다.

새 사람의 윤리는 내면의 감정을 넘어 경제생활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된다.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장재형 목사는 이 명령이 단순히 남의 것을 훔치지 말라는 소극적 금지를 넘어, 기독교적 노동관과 물질관의 전면적인 혁신을 요구한다고 해석한다. 노동의 목적은 더 이상 개인의 생존과 부의 축적에만 있지 않다. 그것은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즉 이웃을 섬기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세상에 드러내기 위한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행위로 승화된다. 도적질의 개념 또한 타인의 재물을 불법적으로 취하는 행위를 넘어, 마땅히 타인에게 돌아가야 할 정당한 몫을 가로채거나, 자신의 자원을 이기적으로 독점하는 모든 형태의 착취와 탐심을 포괄하는 넓은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사도 바울 자신이 장막을 만드는 수고를 통해 자비량하며 동역자들을 도왔던 삶은, 바로 이러한 생산적 이타주의의 모델을 제시한다. 근면과 나눔은 교회가 추구해야 할 핵심 가치이며, 그리스도의 신부 된 성도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실천적 덕목이다.

궁극적으로 새 사람의 모든 덕목은 언어를 통해 집약되고 표현된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장재형 목사는 야고보서의 통찰을 빌려, 혀가 비록 작은 지체이지만 한 사람의 인생과 공동체 전체를 불사를 수 있는 가공할 힘을 지녔음을 역설한다. 파괴적이고 음란하며 비방하는 언어는 지옥 불에서 비롯된 것으로, 영혼을 더럽히고 관계를 파괴하며 공동체를 무너뜨린다. 반면, 새 사람의 언어는 덕을 세우고, 듣는 이에게 은혜를 전달하는 생명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이는 철저한 자기 성찰과 훈련을 요구하는 영적 기술이다. 이 모든 구체적인 윤리적 실천들은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는 포괄적인 원리 아래 통합된다. 우리의 거짓된 말, 제어되지 않는 분노, 이기적인 물질 사용, 파괴적인 언어는 단지 윤리 규범을 어기는 행위가 아니라,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인격적인 성령을 슬프게 하는 관계적 죄악이다. 우리는 구원의 날까지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은 존귀한 존재이기에, 성령의 기쁨이 되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할 책임이 있다. 장재형 목사의 강해는 결국,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서로 용서하라”는 마지막 명령에서 그 정점에 이른다. 우리가 받은 조건 없는 용서의 체험이야말로, 우리가 이 모든 새 사람의 윤리를 실천할 수 있는 유일한 동력이자 근거가 된다. 이처럼 그의 설교는 고상한 교리와 치열한 삶의 윤리가 분리될 수 없는, 총체적이고 전인격적인 신앙의 길을 제시하며 우리를 그 길로 강력하게 초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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