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재형(장다윗)목사는 오늘의 교회가 어디에서 길을 잃었는지 묻기 전에, 처음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를 보자고 권한다. 그가 가리키는 출발점은 언제나 사도행전에 기록된 초대교회다. 초대교회는 복잡한 이론이나 유행하는 방법론으로 세워지지 않았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신뢰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으며, 회개와 세례를 통해 성령의 능력 안에서 공동체가 자라난 단순하고도 견고한 길을 걸었다. 장재형목사는 이 원형을 오늘의 현실 속에서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하는 데 사역의 초점을 맞춘다. 그에게 복음은 설명을 위한 담론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을 살리고 공동체를 바꾸는 능력이며, 그래서 창세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이어지는 구속사의 흐름 속에서 그 능력이 어떻게 역사하고 지금 우리의 삶에 어떻게 스며드는지를 끈질기게 해명한다.
그의 메시지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구원 계획을 다시 듣게 하는 데서 시작한다. 창조의 질서가 인간의 타락으로 무너졌을 때 하나님은 역사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한 민족을 세워 메시아를 예비하셨으며, 율법과 선지자를 통해 죄를 드러내고 회개를 촉구하셨다. 장재형목사는 이스라엘의 흥망성쇠조차 우연한 실패가 아니라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향해 수렴되는 구속사의 장치였다고 본다. 그 모든 약속과 예표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 그리고 부활에서 절정을 이룬다. 여기에서 복음의 핵심이 분명해진다.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에 이를 수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의 대속만이 죄의 형벌을 담당하셨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만나는 자리이고, 부활은 그 공의가 만족되었다는 하나님의 선언이며 새 창조의 시작이다. 그래서 장재형목사가 이해하는 기독교는 고상한 윤리 체계가 아니라, 지금도 생명을 주시는 부활하신 주님의 현재형 능력에 대한 신뢰다. 부활이 사실이 아니면 믿음은 헛되지만, 부활이 사실이기에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다”는 약속 위에 오늘의 삶이 선다.
부활은 동시에 성령 시대의 개막을 뜻한다. 승천하신 주께서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이 오심으로 교회는 비로소 교회가 되었다. 오순절 이후 제자들은 두려움에서 담대로 바뀌었고, 사도행전은 성령이 교회를 어떻게 이끄시는지 보여주는 살아있는 기록이 되었다. 이때 교회를 교회 되게 한 질서는 사람이 설계한 시스템이 아니라 “회개–세례–성령”이라는 하나님이 정하신 복음의 순서였다. 장재형목사는 회개를 감정적 반성으로 축소하지 않는다. 회개는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전 인격을 돌이켜 주 되신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결단이다. 진정한 회개는 삶의 방향과 가치의 축, 주인의 자리를 바꾸어 놓는다. 그다음에 오는 세례는 단순한 가입 의식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살겠다는 공개적 고백이며 표지다. 물 아래 잠김은 죽음을, 물 위로 올라옴은 새 생명을 드러내며, 그때 성령께서 그 사람을 교회라는 몸 안으로 실제로 묶으신다. 이 과정 전체가 은혜의 질서이며, 성령의 선물은 그 은혜의 확증이다.
여기서 장재형목사가 거듭 부각하는 것은 ‘부활 신앙’이다. 부활 신앙은 막연한 내세 위안이 아니라 매일의 현실에서 두려움을 이기고 순종을 가능케 하는 동력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박해 속에서도 복음을 전하고 서로의 소유를 나눌 수 있었던 까닭은, 그들의 정체성이 이미 부활하신 주 안에 숨겨져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고난은 그들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영광으로 이끄는 과정이었고, 죽음은 끝이 아니라 관문이었다. 오늘의 교회도 마찬가지다. 부활 신앙을 소유할 때 신자는 실패의 자리를 배움의 자리로, 상실의 시간을 성숙의 시간으로 전환시키는 해석을 얻게 된다. 그 신앙은 개인의 내면에만 머물지 않고 가정과 직장, 도시와 사회에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내는 창조적 힘으로 확장된다. 장재형목사는 부활 신앙을 잃은 교회는 성장의 기술은 늘릴지 몰라도 생명의 증거를 잃는다고 경고하고, 반대로 부활 신앙을 되찾은 교회는 규모와 상관없이 영혼을 살리고 도시를 섬기는 생명 공동체가 된다고 강조한다.
사도행전의 초대교회는 바로 그런 생명 공동체의 원형을 보여준다. 그들은 사도의 가르침과 교제와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과 집에서 예배했으며, 필요에 따라 소유를 나누었다. 장재형목사는 이것이 단순한 사회복지 모델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부활과 성령 충만이 빚어 낸 삶의 자연스러운 열매이며, 하나님 나라의 정의와 자비가 공동체 안에서 가시화된 증거라는 것이다. 오늘의 교회가 이 모델을 그대로 복제할 수는 없지만, 그 영적 원리는 시대를 초월한다. 말씀에 헌신하고, 기도로 호흡하며, 서로의 필요를 채우는 사랑의 질서를 세우고, 성전 예배와 가정 예배가 연결되는 리듬을 회복하는 것—이것이 본질이다. 이 리듬은 프로그램으로 대체될 수 없고, 성령의 실제적 역사와 신자의 일상적 순종으로만 유지된다.
장재형목사의 사역 철학은 이 원형을 현대의 언어로 번역해 공동체에 심는 일이라 요약할 수 있다. 그는 교회가 세련된 전략이나 이벤트에 기대기 시작할수록 본질에서 멀어진다고 본다. 그래서 설교와 제자훈련, 기도와 선교의 축을 견고히 세우고, 십자가 복음이 회심을 낳고 세례와 공동체 편입으로 이어지며, 공동체가 성령의 선물과 은사를 따라 서로를 세우고 세상으로 파송되는 선순환이 일어나도록 힘쓴다. 이 선순환을 가로막는 것은 때로 성장주의, 때로 인본적 경영 논리, 때로 편의주의다. 그는 교회가 다시 ‘필그림 교회’—세상에 뿌리내리되 하늘을 향해 걷는 순례자의 교회—의 정체성을 자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화려한 건물과 프로그램은 수단일 뿐 목적이 될 수 없다. 참된 부흥은 통계로 측정되지 않고, 한 영혼이 복음 앞에서 무릎 꿇고 일어나 새 생명으로 살아가는 사건에서 확인된다. 그 사건이 쌓일 때 교회는 비로소 도시와 민족을 살리는 소금과 빛이 된다.
이 관점에서 그는 예배 공동체와 선교 공동체의 균형을 거듭 역설한다. 예배는 성령의 충만 가운데 하나님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하고, 선교는 세상을 향해 열린 예배의 확장이어야 한다. 예배 없는 선교는 활동주의로 흐르고, 선교 없는 예배는 내향적 안락에 머문다. 말씀 선포는 지식을 늘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순종을 낳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순종은 언제나 비용을 요구한다. 시간을 떼어 기도하고, 재정을 나누며, 명예를 내려놓고 화해를 선택하는 일상의 십자가가 그것이다. 그러나 부활 신앙을 가진 자에게 이 비용은 손해가 아니라 투자다. 성령께서 그 순종을 통해 공동체를 세우고, 공동체를 통해 도시를 살리시기 때문이다. 결국 교회의 승리는 숫자나 예산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사람의 수로 드러난다.
오늘의 시대는 디지털 기술과 글로벌 네트워크로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 복음 전파의 통로는 넓어졌지만, 영혼을 분산시키는 유혹도 거세졌다. 장재형목사는 이런 시대일수록 초대교회의 원형을 창의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권한다. 큰 홀을 채우는 집회만큼, 거실과 카페에서 드려지는 말씀 나눔과 기도의 작은 불씨들이 도시 곳곳에 심겨야 한다. 주일의 감격이 월요일의 성실로 이어지고, 온라인의 편리함이 오프라인의 섬김으로 완성되어야 한다. 회개와 세례는 한때의 이벤트가 아니라 평생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출발선이다. 매일의 말씀 묵상과 중보기도, 주기적인 금식과 나눔의 실천은 성령 충만을 유지하는 영적 호흡이다. 직장에서는 정직과 탁월함으로, 가정에서는 사랑과 용서로, 사회에서는 공의와 자비로 그리스도의 통치를 증언한다. 그 모든 삶의 방식이 모일 때 교회는 설교보다 더 큰 설득력을 가진다.
요컨대 장재형목사가 제시하는 청사진은 단순하고도 명확하다. 모든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기에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세례를 통해 그와 연합해야 한다. 약속하신 성령을 구하고 받음으로 부활 신앙의 담대함과 능력 안에서 살아야 한다. 사랑과 거룩의 질서를 세우는 공동체를 이루어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가시화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은 사람의 열심이 만들어 내는 산물이 아니라,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지금도 이루시는 구속사의 흐름 속에서 진행된다. 그러므로 교회는 낙심할 이유가 없다. 초대교회를 교회 되게 하신 그 하나님이 오늘도 동일하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 그분의 계획에 자신을 겸손히 내어놓을 때, 성령께서는 다시 회개를 부르시고 세례의 기쁨을 회복시키시며, 부활 신앙의 능력을 우리의 삶과 일터와 도시 속에 부어 주실 것이다. 그때 교회는 본질을 되찾고, 도시는 희망의 징후를 보게 되며, 다음 세대는 신앙의 진정성을 체험하게 된다. 이것이 장재형목사가 오늘의 교회에 던지는 초청이자 약속이다. 초대교회의 길을 지금 여기서 다시 걷는 것, 바로 그 길에서 교회는 참된 교회다움을 회복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거룩한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