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 11 / 2026
제자도의 대가

본회퍼가 붙들었던 질문 —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무엇인가. 소유를 내려놓고 십자가를 지고 끝까지 걷는 사람만이 끝까지 간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나치 감옥의 어둠 속에서도 제자도의 본질을 끝내 놓지 않았습니다. 그는 값싼 은혜가 교회를 병들게 하고, 사람을 안락한 신앙에 가두며, 결국 십자가 없는 믿음으로 미끄러지게 만든다고 보았습니다.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시대에 그는 오히려 더 본질적인 질문을 붙들었습니다.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입춘은 단순한 절기가 아닙니다. 겨울의 끝을 알리는 표시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농사의 시작을 요구하는 날입니다. 밭은 저절로 열매 맺지 않습니다. 누군가 먼저 땅을 뒤집고, 씨를 뿌리고,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손을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믿음도 그렇습니다. 장재형 목사가 설교에서 거듭 일깨우는 것은, 하나님의 일 역시 구경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봄빛보다 먼저 찾아오는 결단
누가복음 14장에서 주님은 제자의 길을 아름다운 수사로 포장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가장 먼저 대가를 말씀하셨습니다.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셨고,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따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물질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재산보다 더 질긴 것들에 묶여 살아갑니다. 안정감, 익숙한 자리, 인정받고 싶은 마음, 오늘의 편안함, 계산된 미래가 모두 또 다른 소유가 됩니다. 그러나 제자도는 움켜쥐는 손으로는 걸을 수 없는 길입니다.
눈물은 끝이 아니라 더 큰 소망의 언어다
이 설교가 더 깊이 다가오는 이유는 제자도를 차가운 의지의 언어로만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명의 환희 한가운데에는 가족의 죽음, 갑작스러운 이별, 미처 다하지 못한 사랑에 대한 후회가 함께 놓여 있습니다. 그때 복음은 현실을 지워버리는 마취제가 아니라, 눈물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을 소망을 붙드는 능력이 됩니다.
십자가를 지는 사람만 끝까지 간다
주님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사랑의 파괴가 아니라 우선순위의 재정렬입니다. 누가복음 14장의 망대 비유는 이 길이 순간의 열정으로는 완성되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시작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가는 사람만이 제자입니다.
훗날 우리는 어떤 대답을 남길 것인가
결국 이 설교의 문장들은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합니다. “Were you there?” 훗날 하나님 나라의 역사 앞에서, 복음의 현장 앞에서, 다음 세대를 세우는 고된 자리 앞에서 우리는 어떤 대답을 남길 수 있을까요. 봄은 늘 꽃보다 먼저 결단으로 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기도는 단순해야 합니다. 주님, 훗날 당신이 물으실 때 “예, 저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제자로 살게 하소서.
Gospel Meditation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