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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

10 / 28 / 2026

그리스도의 삼중직무

그리스도의 삼중직무

갈릴리에서 울린 ‘나를 따르라’는 음성은 오늘도 우리에게 들려온다. 가르치고, 전파하며, 사랑으로 고치시는 그리스도의 사명을 교회는 어떻게 이어 갈 것인가.

예수님의 가르치심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었다. 그분의 말씀은 사람의 내면을 비추고, 굳어진 생각을 깨뜨리며,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했다. 참된 성경 묵상은 머리로 이해한 교리를 가슴의 회개와 손발의 순종으로 이어 가는 일이다.

갈릴리의 빛, 제자를 부르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셨을 때, 그들은 배와 그물을 버리고 따랐다. 그물은 단지 낡은 도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생계였고, 내일의 안전이었고, 가족과 함께 살아가던 삶의 울타리였다. 그러나 주님의 부르심은 그 모든 익숙함보다 더 큰 영광을 보여 주었다. 믿음은 현실을 무시하는 무모함이 아니라, 현실보다 크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용기다.

떡의 유혹을 넘어 말씀의 길로

마태복음 4장의 광야 시험은 제자의 길이 왜 말씀 위에 세워져야 하는지를 보여 준다. 예수님은 돌로 떡을 만들라는 물질의 시험,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왜곡된 신뢰의 시험, 세상 만국의 영광을 주겠다는 명예와 권력의 시험 앞에 서셨다. 인간이 무너지는 자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든 시험을 말씀으로 이기셨다.

장재형 목사는 이 대목에서 제자의 정체성을 중요하게 드러낸다. 시험은 언제나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이라는 방식으로 다가온다. 내가 누구인지 잊는 순간, 물질은 주인이 되고 관계는 집착이 되며 명예는 우상이 된다.

말씀을 밝히 알 때 기쁨이 회복된다

그리스도의 삼중직무가 교회 안에서 살아 움직이려면 공동체는 말씀에 깊이 뿌리내려야 한다. 디모데전서가 말하듯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일에 전념할 때, 교회는 복음을 바르게 전할 힘을 얻는다. 느헤미야 8장에서 에스라가 율법책을 낭독했을 때, 백성들은 말씀을 듣고 울었다. 그러나 그 눈물은 절망으로 끝나지 않았다. 말씀의 뜻을 밝히 알게 되었을 때, 그들에게는 큰 기쁨이 찾아왔다.

가르치고 전하고 고치는 사랑의 사명

예수님의 치유는 병든 몸만을 향하지 않았다. 약한 자, 고통받는 자, 상처 입은 자를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 안에 있었다. 그러므로 오늘의 교회가 그리스도의 삼중직무를 따른다는 것은 예배당 안에 머무는 신앙을 넘어서는 일이다. 가정과 직장, 학교와 병원, 지역 사회와 세상의 아픈 자리에서 가르치고 복음을 전파하며, 사랑으로 고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사도행전의 “금과 은은 내게 없지만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라는 고백은 이 사명의 본질을 선명하게 한다. 교회가 세상에 줄 수 있는 가장 깊은 선물은 단지 제도나 물질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서는 생명, 죄인을 회복시키는 은혜, 절망한 사람을 다시 걷게 하는 소망이다.

갈릴리 호숫가에서 울렸던 “나를 따르라”는 음성은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도 우리의 일상 한가운데, 손에 쥔 그물과 마음의 두려움 위로 조용히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