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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

2026. 6. 20.

가장 비참한 자리에서 울려 퍼진 승리의 선언

가장 비참한 자리에서 울려 퍼진 승리의 선언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 — 세 언어로 새겨진 빌라도의 푯말과 '다 이루었다'의 외침. 가장 낮아진 자리가 곧 가장 높아진 자리였던 십자가의 거대한 역설.

1503년,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모나리자》를 그리며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가장 위대한 것은 가장 단순한 것 속에 숨어 있다." 그 말처럼,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반전은 초라한 나무 십자가 위에서 일어났습니다.

장재형목사의 말씀을 묵상하다 보면, 그 십자가의 현장이 얼마나 극적인 역설로 가득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세 언어로 새겨진 선포

로마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 위에 한 줄의 문장을 기록해 붙였습니다.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

당시 세계의 중심 언어였던 히브리어, 라틴어, 헬라어. 세 개의 언어로 동시에 새겨진 이 짧은 문장은, 사실상 온 세계를 향한 공식 선포였습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즉각 반발했습니다. "자칭 유대인의 왕"으로 고치라 요구했지만, 빌라도는 단 한마디로 일축했습니다. "나의 쓸 것을 썼다."

얼마나 아이러니한 장면입니까. 하나님을 왕으로 섬겨야 할 사람들은 "가이사 외에는 왕이 없나이다"라며 이방 황제에게 무릎을 꿇었고, 정작 이방인이었던 빌라도는 자신도 모르게 예수님을 온 인류의 왕으로 선언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장재형목사가 강조하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사람이 의도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가장 낮아진 자리가 가장 높아진 자리

십자가 처형은 당시 로마 제국이 고안한 가장 잔인하고 수치스러운 형벌이었습니다. 죄수는 마지막 남은 속옷조차 군병들의 제비뽑기에 빼앗겼습니다. 철저히 벌거벗겨진 채, 온 세상의 조롱과 냉기 속에 매달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서, 예수님은 만왕의 왕으로 선포되고 있었습니다. 가장 낮아진 자리가 곧 가장 높아진 자리였습니다.

장재형목사는 이 역설 안에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담겨 있다고 말합니다. 십자가는 실패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죄악과 미움, 고통의 질고를 친히 짊어지고 가시는 자발적 대속의 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저주받은 나무 위에서, 우리를 율법의 저주로부터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고통의 긴 터널 끝에서 예수님은 외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It is finished)."

이 세 글자는 단순한 임종의 말이 아닙니다. 천지창조 이전부터 계획된 구원의 역사가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성되었다는 우주적 선언이었습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가 무너지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던 담이 허물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그 목적이 완전히 성취된 것입니다.

장재형목사의 설교를 통해 이 말씀을 다시 만날 때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은혜가 차오릅니다. '유대인의 왕'이라는 푯말, 십자가 처형, 그리고 "다 이루었다"는 선언. 이 세 가지는 하나의 웅장한 교향곡처럼 연결되어, 기독교 신학의 가장 위대한 역설을 완성합니다.

우리의 삶에 던지는 질문

가장 어둡고 비참한 죽음의 자리가, 사실은 가장 찬란한 생명과 승리의 자리였습니다. 수치의 상징이었던 십자가는 이제 영원한 희망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철저한 자기 비움과 죽음을 통해 만유를 구원하셨고, 그렇게 진정한 온 우주의 왕으로 등극하셨습니다.

장재형목사의 이 말씀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깊은 사랑의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의 삶에도 십자가처럼 보이는 자리, 즉 포기하고 싶은 순간, 수치스럽고 벗겨지는 것 같은 시간들이 있지 않으신가요? 그 자리가 어쩌면, 하나님이 가장 위대한 일을 이루시는 바로 그 현장일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의 삶에서는 이 "다 이루었다"는 말씀이 어떻게 다가오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