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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

2026. 6. 13.

가장 낮은 곳에서 피어난 위대한 사랑

가장 낮은 곳에서 피어난 위대한 사랑

틴토레토의 명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그리스도> 앞에서 마주하는 케노시스의 사랑 — 만왕의 왕이 종이 되신 새 계명의 진정한 의미를 장재형 목사가 풀어냅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틴토레토(Tintoretto)가 남긴 명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그리스도>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화면 너머로 묘한 긴장감이 흐릅니다. 정중앙에서 무릎을 꿇고 제자의 냄새나는 발을 씻기시는 예수님과 달리, 주변의 제자들은 어딘가 불안하고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서로를 응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거대한 비극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제자들은 여전히 "누가 더 큰 자인가"를 두고 세속적인 자리다툼을 벌이던 씁쓸한 교만의 한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변증가인 C.S. 루이스는 그의 저서를 통해 교만을 가리켜 '모든 악의 뿌리이자 영적인 암'이라고 깊이 있게 통찰한 바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근원적 교만과 예수님의 철저한 낮아짐이 극적으로 교차하는 최후의 만찬 자리.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할 장재형 목사(올리벳대학교 설립)의 설교는 바로 이 절망적인 풍경 속에서 피어난 위대한 십자가의 사랑을 인문학적이고 신학적인 깊이로 조명해 줍니다.

케노시스 — 만왕의 왕이 종이 되시다

세상의 가치관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위로 올라가라고, 더 높은 곳에서 타인 위에 군림하라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만물의 주관자이신 예수님께서는 그 다툼의 현장에서 다그치시는 대신 조용히 일어나셨습니다. 겉옷을 벗고 수건을 두르신 채, 가장 비천한 종의 자리로 내려가 제자들의 더러운 발을 친히 씻기셨습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도덕적 겸손이나 친절의 미덕을 보여주기 위한 단편적인 행위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장재형 목사는 이 세족식의 사건을 가리켜, 다가올 십자가의 길을 온몸으로 보여주신 '거대한 구속사적 예표'라고 강조합니다. 신학에서 말하는 '케노시스(Kenosis)', 즉 스스로를 철저히 비워 죽기까지 복종하신 십자가의 본질이 이 수건과 대야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입니다. 만왕의 왕이 기꺼이 종이 되신 이 역설적인 본보기는 십자가의 길이 곧 철저한 자기 비움임을 우리 영혼에 깊이 각인시킵니다.

배신자의 발까지 씻기신 사랑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먹먹한 질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원수였던 가룟 유다의 발까지 씻기셨던 예수님의 심정은 과연 어떠셨을까요? 자신을 은 삼십에 팔아넘길 배신자의 더러운 발을 어루만지시는 그 순간, 주님의 마음은 십자가의 못 박힘보다 더 깊은 고통으로 찢어지셨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정죄와 분노 대신, 배신마저도 끝내 끌어안는 묵묵한 대속의 손길을 택하셨습니다.

장재형 목사의 설교는 이 대목에서 구약의 율법을 넘어선 '새 계명'의 진정한 의미를 우리 삶의 자리로 이끌어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 최후의 당부가 지니는 무거운 무게중심은 '서로 사랑하라'는 실천적 행위 이전에,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이'라는 맹렬하고도 숭고한 전제에 놓여 있습니다.

서로의 짐을 지는 대속의 삶

우리가 일상 속에서 형제의 발을 씻긴다는 것은 단순히 친절한 미소를 건네는 피상적인 관계 맺기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형제의 가장 감추고 싶은 치부, 냄새나고 더러운 허물과 죄악을 율법의 잣대로 심판하지 않고 끝까지 덮어주는 치열한 아가페의 헌신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죗값을 대신 치르신 것처럼, 우리 역시 형제의 무거운 십자가를 기꺼이 나의 것으로 끌어안는 '대속의 삶'을 살아내야 한다는 거룩한 부르심입니다.

바울은 서신을 통해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고 권면했습니다. 장재형 목사 역시 이 말씀을 인용하며, 인간관계와 교회 공동체 안의 모든 다툼이 결국 자기중심성에서 비롯됨을 지적합니다. 우리가 각자의 자아를 버리고 가장 비천한 종이 되어 서로를 먼저 섬길 때, 그곳에는 더 이상 분쟁이 스며들 틈이 사라집니다. 사랑의 새 계명을 완성하는 유일한 길은 기꺼이 종이 되어 서로의 짐을 짊어지는 것뿐입니다.

작은 낮아짐의 자리

사순절 40일의 묵상 기간을 지나는 지금, 우리는 삶 속에서 어떻게 이 위대한 십자가의 길을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을까요? 거창한 종교적 업적이나 눈에 띄는 헌신을 다짐하기 이전에, 내 곁에 있는 가족과 이웃의 허물을 조용히 덮어주는 일상의 작은 낮아짐이 먼저 필요할 때입니다. 내 권리를 기꺼이 포기하고, 상처받고 소외된 이들의 차가운 발을 따뜻하게 감싸 쥐는 그 작은 수고 속에 사망을 이긴 부활의 은혜와 생명이 움트기 때문입니다.

장재형 목사가 온 마음을 다해 전하는 메시지처럼, '섬기는 자가 가장 큰 자'라는 역설적인 천국의 법칙은 이기주의로 얼룩진 오늘날의 세상 속에서 더욱 찬란한 진리의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섬김의 본을 따라 끝까지 사랑으로 나아갈 때, 세상은 비로소 우리를 통해 참된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게 될 것입니다.

가장 낮아짐으로 가장 위대한 사랑을 완성하신 주님의 말씀, 여러분의 삶에서는 오늘 어떻게 다가오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