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6. 6.
가룟 유다, 배신자인가 비극의 영혼인가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앞에서 마주하는 유다의 비극 — 움켜쥔 자아와, 아낌없이 내어주시는 사랑의 충돌. 장재형 목사가 풀어내는 일방적 은혜와 사랑의 절대예정.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앞에 오래 서 있어 본 적이 있으신가요? 밀라노의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벽면을 가득 채운 그 그림 앞에 서면, 시선이 한 곳에서 쉽사리 떠나지 못합니다.
열두 제자가 술렁이는 혼란의 물결 속에서, 유독 한 사람만이 몸을 뒤로 빼고 있습니다. 손에는 은화 주머니를 꽉 움켜쥔 채로. 반면 예수님의 두 손은 식탁 위에 아무런 방어도 없이 고요하게 열려 있습니다.
장재형목사는 이 극적인 대비 속에서 유다 비극의 본질을 읽어냅니다. 움켜쥔 자아와, 아낌없이 내어주는 사랑의 충돌. 다빈치의 붓끝이 포착한 건 단순한 역사의 한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인간 내면 깊은 곳에서 매 순간 벌어지는 영적 전쟁의 초상이었습니다.
중생하지 못한 영혼
우리는 흔히 유다를 태어날 때부터 배신자로 예정된 인물로 여깁니다. 그러나 말씀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전혀 다른 진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목욕'은 단순한 씻음이 아닙니다. 주님의 사랑과 진리 안에서 옛 자아가 완전히 죽고,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중생(거듭남)'의 체험을 상징합니다.
장재형목사(올리벳대학교 설립)는 베드로와 유다의 결정적 차이가 바로 이 영적 목욕의 유무에 있었다고 짚어냅니다. 베드로는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하는 처절한 실패를 맛봤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영적으로 목욕한 사람이었습니다. 무너진 자리에서도 다시 회개하고 일어설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반면 유다는 달랐습니다. 그의 내면에는 아무리 은혜의 말씀이 쏟아져도 쉽게 깨지지 않는, 완고한 자아의 성벽이 굳건히 서 있었습니다.
영국의 기독교 변증가 C.S. 루이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옥의 문은 안에서 잠겨 있다." 유다의 비극은 외부의 어떤 힘이 그를 가둔 것이 아니라, 그가 스스로 자신을 가뒀다는 데 있습니다.
일방적 은혜와 사랑의 절대예정
그렇다면 여기서 진짜 질문이 시작됩니다. 중생하지도 못한 그가, 도대체 어떻게 12사도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을까요?
장재형목사는 이 물음에 놀라운 신학적 통찰로 답합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일방적인 은혜'와 '사랑의 절대예정'이었다고. 예수님께서 유다를 선택하신 건, 배반을 예상하고 구속사의 각본을 완성하기 위한 계산적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정반대입니다.
주님은 오직 절대적인 사랑으로, 유다의 영혼이 반드시 변화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것이라고 끝까지 믿어주셨습니다. 자격 없는 자를 향한 무조건적인 부르심, 그것이 바로 복음의 정수입니다.
돈 궤를 맡기신 사랑
장재형목사의 설교에서 가장 먹먹한 은혜가 흘러나오는 대목이 있습니다. 바로 유다에게 공동체의 돈 궤를 맡기신 장면입니다. 많은 이들이 이 장면을 탐심을 시험하기 위한 함정처럼 해석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그 어떤 제자보다 유다를 깊이 신임하셨습니다. 그가 세상의 유혹도 능히 이겨낼 거룩한 사람이라고, 진심으로 믿어주신 것입니다. 가장 연약해 보이는 자에게 가장 무거운 책임을 맡기심으로써, 그 신뢰의 힘이 유다 스스로를 뛰어넘게 하기를 간절히 바라셨습니다.
그 사랑이 얼마나 깊고 처절했는지를, 우리는 십자가 아래에 서고 나서야 비로소 조금씩 가늠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그러나 유다는 그 넘치는 사랑의 만찬 자리에서도, 끝내 세속적 가치관의 무게를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쏟아지는 은혜의 단비 앞에서, 스스로 마음의 우산을 접지 않은 것입니다.
장재형목사는 스승을 배반하러 걸어가는 유다의 뒷모습을 통해, 오늘 우리에게 날카롭고도 따뜻한 질문을 건넵니다. 혹시 우리도, 십자가의 은혜를 값싼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굳은 자아를 품고 있지는 않은가?
받은 사랑을 깨닫고도, 여전히 은화 주머니를 내려놓지 못하는 우리의 손을 돌아보게 됩니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완고함, 익숙한 것들을 놓지 못하는 집착 — 그 모든 것이 어쩌면 유다의 닫힌 마음과 다르지 않을지 모릅니다.
활짝 열린 주님의 두 손이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향해 기다리고 있습니다. 움켜쥔 것을 내려놓는 그 한 걸음이, 진정한 중생의 기쁨 안으로 들어가는 시작입니다. 자격 없는 우리를 끝까지 믿어주시는 그 압도적인 사랑 앞에, 이제 우리의 완고한 자아를 십자가 아래 조용히 내려놓아야 할 때입니다.
여러분의 삶에서는, 이 다함 없는 사랑의 말씀이 오늘 어떻게 다가오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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