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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

2026. 7. 4.

가장 숭고한 허비, 십자가 고난이라는 이름의 사랑

가장 숭고한 허비, 십자가 고난이라는 이름의 사랑

도스토옙스키의 '실천하는 사랑은 가혹하고 두려운 현실'에서 시작하는 묵상 —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의 무거운 진리와, 케노시스가 완성한 대속의 사랑.

러시아의 위대한 대문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는 그의 필생의 역작인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 조시마 장로의 묵직한 입을 빌려 사랑의 본질을 이렇게 통찰했습니다. "공상 속의 사랑은 낭만적이고 쉽게 열광하지만, 실천하는 사랑은 가혹하고 두려운 현실입니다."

우리는 흔히 사랑을 조건 없는 달콤함이나, 내가 준 만큼 돌려받는 공평한 감정의 교환 잣대로 바라보곤 합니다. 무언가 대가가 주어져야만 합리적인 사랑이라고 믿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학이 말하는 진정한 사랑, 즉 계산 없이 자신의 모든 생명과 소유를 기꺼이 내어주는 십자가의 사랑은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지극히 미련해 보입니다. 때로는 자신이 가진 가장 귀한 것을 아무런 대가 없이 의미 없게 낭비하는 어리석은 '허비'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이 가혹하고도 두려운 현실을 역사상 가장 완벽한 생명력으로 살아내신 분의 흔적을 묵상하며, 오늘은 깊이 있는 장재형목사(올리벳대학교 설립)의 말씀을 통해 고난과 사랑이 어떻게 하나의 맥락으로 이어지는지 그 영적 본질을 자세히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우리 삶에 예기치 않은 고난이 들이닥칠 때, 우리는 종종 그것을 끔찍한 실패나 피하고 싶은 저주로 여깁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진정으로 살리고 사랑하기 위해 스스로 고난의 길을 자처하는 행위, 그것은 결단코 저주가 될 수 없습니다. 참혹한 십자가 죽음의 위기가 코앞에 닥친 절망적인 순간 앞에서도, 예수님은 자신의 안위보다 타인을 먼저 생각하셨습니다. 죽음의 문턱이라는 가장 극단적인 한계 상황 속에서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이 구절에 담긴 무거운 진리와 은혜를 풀어내는 장재형목사의 설교는 우리 삶에 묵직한 울림을 던져줍니다. 예수님이 친히 보여주신 '끝까지'의 사랑은 참으로 경이롭고도 처절합니다. 제자들이 서로 누가 더 높으냐며 헛된 세속적 욕망으로 다투고 있을 때, 주님은 그들의 어리석음을 매섭게 나무라지 않으셨습니다. 당시 가장 천한 노예들만이 하던 일임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오히려 친히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가장 낮은 종의 모습으로 무릎을 꿇어 그들의 더러운 발을 씻기셨습니다.

심지어 자신을 은 30세겔에 팔아넘길 배신자 가룟 유다가 곁에 앉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원수에게 먼저 다가가 떡을 떼어주시며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회개와 사랑의 권면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일상을 가만히 돌아보게 됩니다. 나의 호의가 무시당하거나 상대가 악하게 반응할 때, 우리는 얼마나 쉽게 그 사랑을 거두어버립니까?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상대의 태도나 주변 상황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자신이 마땅히 감당해야 할 몫을 묵묵히, 그리고 끝까지 품어내는 끈질긴 인내인 것입니다.

케노시스 — 자기 비움의 권위

이러한 숭고한 사랑의 극치는 철저한 '자기 비움(Kenosis)'과 낮아짐, 바로 십자가의 고난이라는 결정체로 완성됩니다. 깊은 영적 통찰을 제시하는 장재형목사의 신학적 해석에 따르면, 예수님은 만찬의 주인이자 영원한 스승이셨음에도 스스로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가셨습니다. 이는 세상이 힘의 논리로 말하는 권위와는 완전히 다른 위대한 역설입니다. 참된 권위는 타인을 지배하고 군림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완전히 비우고 낮아져 타인을 섬기는 데 있음을 몸소 증명하신 것입니다.

정죄가 아닌 대속의 십자가

여기서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토록 끔찍한 고난을 홀로 감내하며 끝까지 제자들을 사랑하신 본질적인 이유는, 바로 그들의 죄를 '대속(代贖)'하고 온전히 '용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율법의 잣대는 참으로 서늘하고 매섭습니다. 죄지은 자를 날카롭게 정죄하고 가차 없이 돌을 던져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 세상과 율법의 방식입니다.

그러나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이 보여주신 은혜는 그 궤적을 완전히 달리합니다. 다른 사람의 무거운 짐과 추악한 허물을 자신이 대신 끌어안고 용서하는, 뜨겁고도 생명력 넘치는 법입니다. 정죄가 아닌 대속과 용서의 십자가. 장재형목사는 이 숭고한 희생을 가리켜 모든 멸시와 배반의 짐을 홀로 진 어린양의 걸음이자, 우주적인 속죄를 단번에 이루어낸 사랑의 절정이라고 묵상합니다.

그리스도의 법을 살아내는 삶

결국 끝까지 사랑하심으로써 십자가 고난을 스스로 짊어지신 예수님의 모습은, 오늘을 살아가는 제자들과 우리 모두에게 가장 위대하고도 실천적인 도전을 던집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 새 계명은 그저 강단 위에서 울려 퍼지는 미사여구나, 입술로만 고백하는 얄팍하고 낭만적인 감정이 결코 아닙니다. 주님이 먼저 십자가 고난의 무거운 짐을 피 흘리며 짊어지신 것처럼, 우리 역시 각자의 척박한 일상 속에서 상처 입고 지친 형제의 더러워진 발을 기꺼이 씻어주어야 합니다.

서로의 무거운 짐을 외면하지 않고 기꺼이 대신 져주는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를 향한 준엄하고도 따뜻한 주님의 부르심인 것입니다. 십자가의 고난은 결코 실패나 참혹한 죽음이라는 허무한 마침표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부활과 영원한 화해를 열어내는 가장 찬란한 생명의 문입니다.

장재형목사가 전하는 이번 설교의 결론처럼, 타인을 위해 스스로 고난을 짊어지신 예수님의 그 거룩한 발자취를 온전히 따라갈 때 우리는 비로소 죽음의 권세를 넘어선 부활의 영광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눈에는 가장 미련하고 어리석어 보였던 십자가의 거룩한 허비가, 사실은 인류를 구원한 가장 지혜롭고 완벽한 사랑이었음을 오늘 다시 한번 우리의 심비에 깊이 새겨봅니다.

오늘 하루, 우리의 삶은 어떤 사랑을 실천하며 흘러가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삶에서는 이 십자가의 묵상과 말씀이 오늘 어떻게 다가오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