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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

2026. 6. 27.

가장 비참한 죽음이 만든 가장 찬란한 승리

가장 비참한 죽음이 만든 가장 찬란한 승리

쓸개 탄 포도주를 거절하시고 골고다의 모든 고난을 온몸으로 마신 사랑 — 죽음으로 죽음을 이긴 생명의 역사, 자기 비움이 만들어낸 부활의 서막.

16세기 종교개혁의 불꽃을 피워 올린 마르틴 루터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십자가를 이해하는 자는 성경의 모든 것을 이해한다."

처음 이 말을 접했을 때, 저는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오늘, 장재형목사의 말씀을 통해 골고다의 언덕 앞에 다시 서고 나서야 비로소 그 무게가 가슴 깊이 내려앉았습니다.

십자가는 단순한 처형의 기록이 아니었습니다. 인류 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사랑의 완성이었습니다.

마취제를 거절하신 사랑

예수님은 처형장으로 향하는 그 길에서, 한 가지를 단호히 거절하셨습니다. 쓸개 탄 포도주, 즉 고통을 무디게 만드는 마취제였습니다.

왜 거절하셨을까요. 우리의 죄와 허물을 남김없이 씻어내기 위해서는 그 고난의 쓴 잔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온몸으로 마셔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의 무게는, 곧 우리가 짊어져야 할 죄와 절망의 무게였습니다. 구약의 속죄양이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죄를 홀로 짊어지고 아무도 없는 광야로 걸어 들어갔듯, 예수님은 그 지독한 고통의 길을 맨몸으로, 오롯이 혼자 걸어가셨습니다. 그 사랑의 크기 앞에 서면, 어떤 언어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골고다, 저주의 형틀을 품으신 자리

그렇게 걸음을 옮겨 당도한 곳이 골고다였습니다. 히브리어로 '해골'을 뜻하는 그 이름처럼, 저주와 죽음의 냄새가 진동하는 땅이었습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율법에 따라 돌로 치는 형벌을 내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극악한 증오심으로 로마의 십자가 처형을 택했습니다. 십자가는 노예와 반역자에게 내려지는, 인간이 고안해 낸 가장 수치스럽고 잔혹한 형벌이었습니다.

그 저주의 형틀을 예수님은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온전히, 품어내셨습니다.

장재형목사는 바로 이 지점에서 묵직한 신학적 질문을 던집니다. 어떻게 가장 어두운 죽음의 자리가 모든 생명을 살리는 구원의 문이 될 수 있었는가.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신 말씀처럼, 스스로 율법의 저주를 짊어지고 나무에 달리심으로써 어둠 한복판에서 찬란한 빛이 터져 나오는 역전이 시작된 것입니다. 가장 낮은 곳이 가장 높은 곳이 되는 순간, 가장 비참한 죽음이 가장 위대한 승리의 씨앗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다 이루었다"의 장엄한 외침

그리고 마침내, 그 모든 것이 완성되던 그 절망의 끝자락에서 선언이 울려 퍼졌습니다. "다 이루었다 (It is finished)."

이것은 패배자의 마지막 신음이 아닙니다. 온 우주를 향해 사랑의 최종 승리를 선포하는, 인류 역사상 가장 장엄하고 힘 있는 외침입니다.

장재형목사(올리벳대학교 설립)의 말씀이 가슴 깊이 울리는 것은 바로 여기서입니다. 세상의 눈에는 모든 희망이 끊어진 것처럼 보이던 그 순간, 예수님은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믿음과 완전한 순종으로 죽음의 강을 건너셨습니다. 그 순종이 죽음을 삼켰고, 그 사랑이 어둠을 통째로 밝혔습니다.

골고다는 종착역이 아니다

장재형목사의 이번 은혜로운 설교가 강조하듯, 골고다의 십자가는 슬픔의 종착역이 아닙니다. 죽음으로 죽음을 이긴 생명의 역사이며, 철저한 자기 비움이 만들어낸 부활과 영광의 찬란한 서막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고난과 무거운 짐 앞에서도, "다 이루었다"는 그 선언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절망을 희망으로, 눈물을 감사로, 끝을 새로운 시작으로 바꾸는 능력이 그 말씀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가장 어두운 밤이 지나야 비로소 찬란한 아침이 밝아오듯, 십자가의 길 끝에는 반드시 승리의 면류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이 묵상을 함께 나누며, 한 가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에서, "다 이루었다"는 이 말씀은 어떻게 다가오시나요?

혹시 지금 이 순간 골고다처럼 느껴지는 자리에 서 계신 분이 있다면, 그 가장 어두운 자리에서도 동일한 역전의 은혜가 반드시 임하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