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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

2026. 7. 25.

물이 포도주가 될 때

물이 포도주가 될 때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일어난 첫 번째 표적 — 평범한 자리에 찾아온 결핍, 그리고 '무엇이든 그가 시키는 대로 하라'는 작은 순종이 여는 기적의 문.

모차르트의 교향곡 41번 '주피터'의 마지막 악장에는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다. 서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다섯 개의 선율이 동시에 흘러나오다가, 어느 순간 그것들이 하나로 수렴되며 황홀한 화음을 이루어낸다.

요한복음 2장의 가나의 혼인 잔치가 바로 그런 장면이다. 평범한 마을의 작은 잔치, 갑작스럽게 떨어진 포도주, 하인들의 조용한 순종, 그리고 예수님의 명령. 이 평범한 요소들이 하나로 모이는 순간, 물이 포도주가 되는 첫 번째 표적이 일어난다. 이 표적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장재형목사(미국 올리벳대학교 설립)의 강해를 따라 천천히 걸어가 본다.

표적은 일상의 잔치에서 시작된다

요한복음은 이 사건을 예수님의 첫 번째 표적이라고 명명한다. 표적이란 단순한 기적이 아니다. 그것은 영적 실재를 가리키는 징표이며, 보이는 것 너머에 있는 더 깊은 진실을 드러내는 사건이다.

장재형목사는 이 첫 표적이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일어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말한다. 예수님은 왕궁이 아닌 작은 마을의 잔치에 오셨다. 종교 지도자들의 집회가 아닌, 혼인의 기쁨이 가득해야 할 평범한 자리에 오셨다. 하나님의 아들이 첫 번째 표적을 행하시기로 선택하신 장소가, 바로 이 일상의 잔치 자리였다는 것이 이미 하나의 메시지다.

그런데 그 잔치에 문제가 생겼다. 포도주가 떨어진 것이다. 유대 문화에서 혼인 잔치의 포도주가 떨어진다는 것은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었다. 기쁨이 넘쳐야 할 자리에 갑작스럽게 결핍이 찾아온 것이다.

마리아처럼, 그 결핍을 그분 앞에 내놓는 것이 시작이다. 결핍을 숨기거나 스스로 해결하려 발버둥치는 대신, 있는 그대로 그분께 가져가는 것. 그 솔직함이 은혜의 문을 연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라"

예수님께 말씀드린 마리아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답하셨다.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이 말씀은 처음 읽으면 냉담하게 느껴진다. 마치 거절처럼 들린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 말씀 이후에도 하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라." 마리아는 거절당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장재형목사는 이 장면에서 '때'라는 단어가 요한복음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신학적 개념임을 짚는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 때는 십자가와 부활로 완성되는 구원의 결정적 순간을 가리킨다. 아직 그 때는 아니지만, 예수님은 그 최후의 때가 오기 전에도 결핍을 채우시는 분이다.

우리의 기도가 즉각적인 응답으로 돌아오지 않을 때도, 그분은 우리의 필요를 외면하지 않으신다. 마리아처럼, 그분이 시키시는 것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다. 그 기다림이 신앙이다. 신앙이란 종종 그 자리에서 시작된다. 확신보다 먼저, 순종이 온다.

율법의 항아리에 부어진 새 언약

하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돌항아리 여섯 개에 물을 아귀까지 채웠다. 그 항아리들은 원래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위한 용도로 사용되던 것이었다. 율법적 씻음을 위한 물이 담기던 그 항아리에, 이제 예수님의 명령을 따른 하인들의 순종이 더해졌다. 그것을 연회장에게 가져다 올렸을 때, 그것은 포도주가 되어 있었다. 그것도 처음 낸 것보다 더 좋은 포도주였다.

장재형목사는 이 돌항아리가 율법의 시대를 상징하며, 그 안에 예수님이 새 언약의 기쁨을 부으신다는 복음의 선언으로 이 장면을 읽는다. 의식적 정결을 위한 물이, 잔치의 기쁨을 위한 포도주로 변화되었다. 율법의 그림자가 은혜의 실체로 바뀌는 것이다.

이것이 첫 번째 표적이 선언하는 복음의 핵심이다. 새 언약 안에서 우리가 누리게 된 것은, 의무를 다하는 것이 아니라 잔치에 참여하는 것이다. 가나의 표적은 그 초대장이다. 두려움이 아니라 기쁨으로, 의무가 아니라 감사로 나아오라는 초대.

갈수록 더 좋아지는 잔치

이 기적이 일어나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예수님은 직접 물에 손을 대거나 항아리를 건드리지 않으셨다. 하인들이 순종하여 물을 채웠을 때, 그리고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었을 때, 기적은 그 과정 안에서 이루어졌다. 결과를 미리 보장받지 못한 상태에서의 순종이었다.

우리의 능력이나 재능이 아니라, 말씀을 따르는 작은 발걸음이 하나님의 역사를 여는 열쇠가 된다.

연회장이 처음 맛본 그 포도주가 처음 것보다 더 좋았다고 말했을 때, 그 안에는 깊은 진리가 담겨 있다. 예수님과 함께하는 삶은 끝으로 갈수록 더 좋아진다. 세상이 제공하는 잔치는 처음에 좋은 것을 내고 사람들이 취한 후에는 나쁜 것을 내지만, 하나님의 잔치는 끝까지 점점 더 좋아진다.

오늘 나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가나의 혼인 잔치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의 인생이라는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지는 순간이 온다. 충분했던 것이 바닥나고, 기쁨이 사라지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순간이 온다. 그 자리에서 이 말씀은 조용히 묻는다. 그 결핍을 그분 앞에 내놓았는가. 무엇이든 그가 시키는 대로 하겠다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가.

장재형목사는 이 말씀의 강해를 통해 우리 삶에 주어진 그 작은 순종의 자리를, 온전히 채워가는 것이 신앙의 일상이라고 말한다. 매일 반복되는 기도와 말씀, 공동체 안에서의 작은 헌신, 이웃 앞에서의 작은 배려. 그 모든 것이 물을 채우는 행위다. 대단한 믿음의 결단이 아니라, 오늘 말씀대로 한 걸음을 내딛는 것. 그 순종이 쌓여 삶의 잔치가 점점 더 풍성해진다.

가나에서 첫 표적을 행하신 그분이, 오늘 나의 삶이라는 잔치에도 와 계신다. 포도주가 떨어진 자리에서,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는 그 단순한 명령을 오늘도 주고 계신다. 그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오늘 우리의 신앙이다.

지금 당신의 삶에서 포도주가 떨어진 것 같은 자리는 어디인가요? 그 자리에서 예수님이 시키시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 오늘 하루 묵상해보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