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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

2026. 7. 11.

가장 어두운 자리에서 피어난 말, "다 이루었다"

가장 어두운 자리에서 피어난 말, "다 이루었다"

렘브란트가 평생 그린 십자가, 칠흑 같은 어둠 한가운데서 홀로 빛나던 그분의 얼굴 — '다 이루었다'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습니다.

렘브란트가 평생 가장 많이 그린 주제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바로 십자가였습니다. 그는 십자가를 수십 번 캔버스에 옮겼는데, 그 그림들 속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이 언제나 가장 밝게 빛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변은 칠흑 같은 어둠인데, 그 어둠 한가운데서 오직 그분의 얼굴만이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렘브란트는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십자가가 끝이 아니라는 것을.

최근 장재형목사(올리벳대학교 설립)의 설교를 통해 이 오래된 진실을 다시금 마음 깊이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수없이 들어온 말씀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가슴 어딘가가 조용히 무너지는 느낌이었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확신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는 로마 제국이 고안한 가장 잔인한 처형 도구였습니다. 반역자와 흉악범에게 내려지는 형벌이었고, 그곳에서 죽는다는 것은 단순한 육신의 소멸이 아니라 사회적 수치와 저주의 낙인을 함께 받는 것이었습니다. 세상 어떤 희망도 숨 쉴 수 없는 자리. 그 자리에 예수님이 달리셨습니다.

장재형목사 말씀은 이 장면에서 우리가 놓치기 쉬운 한 가지를 선명하게 짚어냅니다. 예수님은 그 처절한 고통의 길을 걸어가시면서, 단 한 순간도 이것을 '실패'라고 여기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채찍에 살이 찢기고, 가시관이 이마를 파고들고, 무거운 십자가를 끌며 걸어가던 그 길에서도, 그분의 내면에는 흔들리지 않는 하나의 확신이 있었습니다. 이 길의 끝은 영광이다. 그 확신이 그분을 무너지지 않게 붙들었습니다.

우주를 향한 승리의 선포

모든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숨이 끊어지기 직전,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외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It is finished)."

이 외침은 탈진한 자의 체념이 아니었습니다. 패배자의 마지막 신음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온 우주를 향해 터뜨린 완전한 승리의 선포였습니다.

C.S. 루이스는 고통을 "영혼을 깨우는 확성기"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처럼, 십자가의 가장 깊은 고통의 자리는 동시에 가장 위대한 사랑이 완성되는 자리였습니다.

장재형목사의 신학적 해석이 우리 가슴에 새겨주는 것이 바로 이 역설입니다. 세상의 눈으로는 처참한 패배처럼 보이는 그 자리가, 실은 죽음의 권세를 영원히 무너뜨린 가장 찬란한 보좌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당신 자신의 어떤 허물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짊어져야 할 죄의 무게를 대신 지신, 속죄양으로서의 숭고한 대속이었습니다. 미움을 미움으로 갚지 않으시고, 저주를 온몸으로 받아내심으로써, 오히려 그 저주의 사슬을 영원히 끊어내셨습니다. 죽음으로 죽음을 이기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삶 속에서

장재형목사 설교가 묵직하게 전하는 이 메시지는 2천 년 전의 먼 이야기가 아닙니다. 굳게 닫혔던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담이 무너지고, 진정한 화해와 영원한 생명의 길이 열린 그 사건이, 오늘 우리 각자의 삶 안에서도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입니다.

살다 보면 모든 것이 끝난 것만 같은 순간을 만납니다. 아무리 애써도 풀리지 않는 관계,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시간들. 그 자리에서 우리는 종종 "이제 다 끝났다"고 중얼거립니다.

하지만 렘브란트의 그림처럼, 가장 어두운 그 자리에서 오히려 빛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날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여겨지는 바로 그 순간이, 진정한 은혜가 시작되는 지점일지도 모릅니다. 십자가의 "다 이루었다"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으니까요.

칠흑 같은 어둠 한가운데서 완성의 빛을 선포하신 그분의 사랑을, 오늘 조용히 내 안으로 옮겨봅니다.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의 삶에서 "다 이루었다"는 이 말씀은 어떻게 다가오시나요?